세계 최고의 영화제, 국제 비엔날레로 유명한 ‘물의 도시’
‘영웅’ 나폴레옹 매료시킨 유럽의 걸작 한자리에
야시장과 호젓한 카페 뒷골목 밤거리도 아름다워

 

리알토 다리에서 바라본 대운하 풍경. ⓒ백승휴 작가
리알토 다리에서 바라본 대운하 풍경. ⓒ백승휴 작가

기차가 바다 위로 접어든다. 찬란한 햇살이 아드리아해가 시작되는 이곳, 물결 위로 부서진다. 기차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 산타루치아역에 멈춘다. 시간 앞에 선, 그래서 더욱 소중한 도시 베네치아에 온 것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세상에 이런 곳은 없다.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숙소로 가서 짐을 내려놓고 곧바로 선착장으로 가자.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대운하를 느껴봐야 한다. 크고 작은 섬들이 모인 이곳, 좁은 골목길과 좁은 다리들이 미로처럼 이어진 이 도시에 차가 다니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먼 거리는 수상버스, 즉 바포레토를 타야 한다.

낭만이 흐르는 ‘물의 도시’

표를 샀다면 개찰을 한 후 잘 간수하고 산마르코 광장행 버스에 오르자. 기왕이면 뱃머리에 가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즐겨보자. 승용차 역할을 하는 모터보트들과 작은 유람선인 곤돌라가 스쳐 지나간다. 운하의 양옆으로는 베네치아 특유의 창문 널찍한 멋진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18세기 화가 카날레토가 그렸던 그 세상이다.

베네치아는 영어로 베니스라고 불린다. 이곳은 세계 최고의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자 그 독특함으로 이미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촬영지이기도 하다. 또한 비엔날레의 본고장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도 자랑한다.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버스는 리알도 다리를 지나 굽이치는 대운하를 헤치고 간다. 그러다 멋진 성당들에 눈을 빼앗길 무렵, 버스는 산마르코 광장에 닿는다. 베네치아 관광의 일번지이자 그곳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광장. 이곳을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던 이는 바로 나폴레옹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광장에 우뚝 선 종루에 올라보자. 70m 높이를 자랑하는 종루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베네치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상상했던 것보다 베네치아는 꽤 크다. 멀리 베네치아를 둘러싼 여러 섬들도 선명히 보인다.

광장의 하이라이트인 산마르코 대성당은 마르코 성인의 유골을 보존하는 곳이다. 9세기 초엽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골을 몰래 훔쳐 온 이후 베네치아는 성마르코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됐다. 11세기 말에 비잔틴 양식으로 대대적인 증축을 한 이후 이 아름다운 성당은 동쪽의 비잔틴 제국에서 빼앗아 온 유물들로 화려하게 장식되기 시작했다.

바로 옆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왕이 다스린 적이 없던 이 도시는 13세기 초에 있었던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때의 십자군은 역사에 오명을 남긴 이들이다. 본래의 목표를 잊고 동맹국인 비잔틴 제국을 공격해 약탈한 이른바 도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배후엔 베네치아가 있었고 이때 약탈한 엄청난 보물과 황금이 베네치아의 전성기를 일구는 기반이 됐다.

 

아쿠아 알타는 이탈리아어로 높은 물을 의미한다. 아쿠아 알타는 바닷물이 도시로 들어오는 현상을 가리킨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백승휴 작가
아쿠아 알타는 이탈리아어로 높은 물을 의미한다. 아쿠아 알타는 바닷물이 도시로 들어오는 현상을 가리킨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백승휴 작가

 

산마르코 광장을 덮었던 바닷물이 아침이 되어 빠지고 있다. ⓒ백승휴 작가
산마르코 광장을 덮었던 바닷물이 아침이 되어 빠지고 있다. ⓒ백승휴 작가

예술이 꽃핀 도시… 걸작 한자리에

산마르코 광장을 즐겼다면 수상버스를 타고 다시 대운하를 거슬러 올라와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가보자. 이곳은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룩했던 티치아노, 베로네세, 틴토레토의 걸작들을 비롯해 이름난 여러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이 도시 최고의 미술관이다.

이 그림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베네치아는 100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무릎 꿇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베네치아를 손쉽게 점령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그는 적은 병력과 열악한 무기를 가지고도 이탈리아 북부를 차례차례 굴복시키고 마침내 베네치아에 입성했다.

베네치아를 둘러본 나폴레옹은 그 화려함과 아름다운 예술에 매료됐다. 하지만 작품들을 모두 둘러볼 시간이 없었던 그는 걸작들을 한곳에 모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하여 서로 볼 일이 없었던 작품들이 한 건물에 모였는데 이것이 바로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관람 순서 맨 마지막에 있는 조르조네의 그림 ‘폭풍’을 놓치지 말자. 서양미술사에 풍경화의 시작을 알린 걸작이다.

다시 바포레토에 올라 리알토 다리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산토마 선착장에서 내린다. 골목으로 접어들면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성당이 우리를 맞이한다. 산타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이곳에는 티치아노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린 제단화가 있다. ‘성모 승천’. 이 그림 하나로 약관의 그는 베네치아 최고의 화가는 물론 세계적인 화가로 발돋움했다.

티치아노는 젊을 때부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다. 그의 그림을 얻기 위해 황제와 교황은 물론 수많은 영주와 추기경들이 기를 쓰고 노력했다. 웬만한 권력자들도 보통 2년을 기다려야 그의 앞에 설 수 있었다니 티치아노의 인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시대는 무려 60년이나 지속됐다. 그 결과 그는 16세기 유럽 회화의 군주로 불리게 된다.

조금씩 석양이 하늘을 물들인다. 다시금 카메라를 꺼낼 시간이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을 바라보고 셔터를 눌러도 되고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에서 산마르코 광장을 바라보고 찍어도 된다. 리알토 다리 부근도 이에 못지않다. 어둠이 짙어가면서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히는 베네치아의 ‘매직아워’가 시작된다. 어디를 바라보든 셔터를 누르면 작품이 된다.

매년 100일 간 밀물 때면 물에 잠겨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어둠이 내린 베네치아의 뒷골목을 걸어보자. 대운하 주변의 ‘앞모습’과는 전혀 다른 베네치아의 ‘속살’이 느껴진다. 밤이 깊을수록 골목 어디에나 물결 소리 더해지는 베네치아. 그 뒷골목에는 잠시 열리는 야시장과 호젓한 카페가 퇴근길의 손님들을 기다린다. 이러한 밤 거리에 반한 이들은 반드시 베네치아에 다시 온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 다시 해가 뜬다.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보자. 만약 운이 좋다면 완전히 물에 잠긴 광장을 볼 수 있다. 아쿠아 알타. 베네치아는 지금도 연평균 100일 정도는 밀물 때 잠긴다. 해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잠기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관광객들에게는 놀라운 구경거리이며 때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이곳 베네치아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아쿠아 알타는 자연이 내리는 고통이다. 그런데 이 고통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베네치아 최후의 날이 머지않아 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베네치아가 ‘시간 앞에 서 있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이 도시의 수명을 좀 더 연장하기 위해 지금 ‘모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것이 완공되면 밀물 때 둑이 올라와 베네치아를 지켜주고 썰물 때 내려가 배가 다닐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는 없다. 잠시 더 생명 연장을 하는 것뿐이다.

베네치아는 지금도 우리를 부른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가 언제까지 우리를 부를 수 있을까. 베네치아는 이미 시간 앞에 서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전경. 티치아노의 대형 벽화가 보인다. ⓒ백승휴 작가
아카데미아 미술관 전경. 티치아노의 대형 벽화가 보인다. ⓒ백승휴 작가

 

산 마르코 종루에서 내려다본 베네치아. ⓒ백승휴 작가
산 마르코 종루에서 내려다본 베네치아. ⓒ백승휴 작가

베네치아 여행 이모저모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홀수 해 6월부터 11월까지 비엔날레 공원과 아르세날레를 중심으로 열린다. 베네치아(베니스) 영화제는 매년 8월 말부터 9월 첫 주까지 리도섬에 있는 시네마 궁전을 중심으로 상영된다. 1월 말에서 2월 사이에 열리는 베네치아 카니발도 빼놓을 수 없다. 카니발 시기엔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화려한 가면을 하나 사서 직접 축제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무라노 섬은 유리공예로, 부라노 섬은 레이스 산업으로 유명하다. 베네치아는 물가가 조금 비싼 편이다. 척박한 환경임을 이해하고 각오한다면 먹거리를 먹거나 기념품 등을 살 때 속상한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 표는 1회권을 사기보다는 머무는 기간만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종일권을 끊는 것이 좋다. 1박2일 머물 예정이라면 24시간권을 끊는 식이다. 산마르코 광장의 여유를 즐기려면 카페 플로리안이 제격이다. 커피 한 잔을 시켜도 라이브 음악 연주를 듣는 비용이 추가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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