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로 드러난 미 명문대 동시 입학 소동
1등주의·학벌주의 등 한국 사회 모순 드러내

 

‘천재소녀’ 논란을 빚은 김모양. ⓒ뉴시스
‘천재소녀’ 논란을 빚은 김모양. ⓒ뉴시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입학해 화제를 모았다가 거짓이라고 밝혀진 ‘천재소녀’ 해프닝은 이 말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한국 언론은 “미국 명문대가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을 하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는 18세 한국인 소녀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첫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 ‘받아쓰기 관행’은 결국 오보로 이어졌다. 이번 촌극은 거짓말을 한 ‘천재소녀’와 미국 명문대 동시 입학 소식에 감탄하며 받아 쓴 언론, 1등만 기억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주인공인 김모양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지난 2008년 일간지 기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김양은 미국에 가자마자 각종 경시대회에서 최고 성적으로 입상해 교포 사회에서는 ‘하버드대에 갈 애’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공립 명문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에 진학했다. 이러한 주위의 높은 기대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김양이 느꼈을 압박감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거짓말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버드대 조기 입학부터 두 대학에 동시 입학을 허가받은 일과 저커버그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일 모두 사실과 다른 정황이 드러났을 때 김양의 아버지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책임이며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 오히려 아빠인 제가 아이의 아픔을 부추기고 더 크게 만든 점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는 사과 글을 보냈다. 그리고 “앞으로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 데 진력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일을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다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소녀가 벌인 해프닝이라고만 하기에는 씁쓸한 점이 많다. 김양 아버지의 말처럼 김양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끝나는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 공부를 잘했던 김양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특목고에 다니면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과도한 기대를 받았을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 좌절되면서 시작한 사소한 거짓말이 그 시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 겪게 된 소통의 부재, 똑똑한 아이들을 품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 ‘최고’만을 바라는 학벌주의도 ‘천재소녀’의 비극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천재소녀’ 사건은 한 아이와 그 부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과 교육, 1등주의 등 총체적인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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