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교육과정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나 관심에 따라 마음껏 선택해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제공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교육과정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나 관심에 따라 마음껏 선택해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제공

근래에 학교가 크게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학교에는 ‘교육과정’이라는 게 있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는 바로 이것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교사들조차 그러하다.

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교육과정이란 ‘모든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일정한 체계와 순서로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교육과정의 원형은 근대학문의 갈래와 지식을 판박이로 하여 18~19세기에 서양에서 형성됐다. 교과목들은 곧 학자들이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며 교과 내용은 각 학문 분야의 기초 지식이다.

그러나 고인이 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벌써 20여 년 전에 학교가 교과지식 위주의 교육과정을 버릴 것을 권고했다. 사회에 지식이 많이 보급되기 전인 근대사회 초기에는 이런 교육과정이 큰 역할을 했지만, 학교 밖에서도 기초 지식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다른 종류의 지식, 예컨대 학습하는 방법 같은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에 비춰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이론적이고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실제로 배우는 것은 제대로 된 교과 지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학습 의지가 있는 아이들은 문제 풀이 중심의 시험 대비 공부라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긴긴 시간을 무료하게 때우거나 일탈적 행위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무의미감(meaninglessness)을 갖게 되어 차츰 학교에서 멀어진다. 이들을 붙잡는 마지막 끈은 졸업장에 대한 미련과 부모님의 성화다.

아이들이 학교 공부에 대해 의미를 못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자신의 관심이나 취향과 상관없이 주어진 교과 내용들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의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치면 무조건 받아들였다. 그 다음의 학생들은 시험에 나온다면 공부했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아이들은 자기 관심사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음으로, 현재의 교육과정이 획일적이라는 점이다. 각자의 능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속도로 배우도록 하고 그 결과를 평가해 서열을 매긴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 하나 더 짚는다면, 교과 지식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거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잘게 나뉜 교과 지식이 현실 문제의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한 요즘의 아이들에게 이론적인 지식 수업은 자장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교육과정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나 관심에 따라 마음껏 선택해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아이의 현실적 진로와도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매우 유연한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구시대의 유물인 현행 국가 교육과정 체제는 전면 개편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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