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늘면 차단 논의하겠다는 네이버
차단 기준조차 들쭉날쭉한 페이스북
여성혐오에 무딘 사회 현실 드러내
성별·지역 등 이유로 혐오 발언 규제 필요

 

네이버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이나 상대를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한 댓글 사용을 막기 위해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 등의  문구를 담은 안내창을 띄운다. 하지만 여성혐오 표현은 아무런 제재없이 사용할 수 있다. 사진=네이버 화면 캡쳐
네이버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이나 상대를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한 댓글 사용을 막기 위해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 등의 문구를 담은 안내창을 띄운다. 하지만 여성혐오 표현은 아무런 제재없이 사용할 수 있다. 사진=네이버 화면 캡쳐

‘김치녀’는 한국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단어다. 온라인 공간에서 무분별하게 쓰이는 이 혐오의 단어는 온라인을 넘어 일상 속으로 퍼지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등장할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향해 “선생님도 김치녀냐”고 묻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여성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개그맨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활발하게 방송활동 중이다. 여성에 대한 비하와 조롱, 멸시가 도를 넘으면서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규제를 담당해야 할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업체는 뒷짐만 지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뉴스 댓글란에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특정 계층과 민족, 종교 등을 비하하는 단어들을 쓸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대표적으로 ‘미친놈’이라는 욕설이 섞인 댓글은 입력조차 안 된다. 그 대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을 담아주세요’나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글이 담긴 알림창이 뜬다. 악성댓글을 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반면, ‘김치녀’ ‘김치년’ ‘보슬아치’ 등의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공고히하는 표현은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이 담긴 댓글은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 정서가 일베(일간베스트) 등 특정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된 포털사이트에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이버 홍보 담당자는 뉴스 댓글란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혐오 표현에 대해 회사 측도 알고 있다면서도 “댓글 전체를 모니터링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모든 단어를 금칙어로 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부적절한 댓글에 대한 신고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신고 데이터가 쌓이면 모니터링 담당 부서에서 논의를 거쳐 금칙어로 지정할 순 있다”고 답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치녀’라는 이름을 단 페이스북 페이지는 줄잡아 2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12만 명이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는 여성을 증오·멸시하고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게시물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선 이화여대 학생 전체를 성적으로 비난하고, 특정 여성이 쓴 게시물과 사진을 그대로 올려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이들이 해당 페이지를 삭제하기 위해 ‘편파적 발언 또는 상징이 포함됐다’고 신고를 하고 있지만, 페이스북 측은 ‘커뮤니티 표준’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커뮤니티 표준’ 중 ‘편파적 발언’ 항목에는 “인종·종교·성적 취향·성별 또는 성적 정체성 등 보호받는 소수 그룹을 향한 적개심을 조장하는 단체나 개인은 페이스북을 이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 2013년에도 “여성혐오 게시물 실태를 점검하고 관련 지침을 개선해 법률 전문가나 여성단체 등의 평가를 받겠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내놓은 기준과는 달리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김치녀’ 페이지에는 여전히 혐오 표현을 담은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지금처럼 확산·유통될 경우, 혐오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는 주류 사회로 편입할 수 없다”며 “혐오 발언을 범죄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처럼 혐오 표현을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성별이나 종교,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등으로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이른바 ‘혐오금지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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