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여성통일대회 기간 중 남북한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경란
2002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여성통일대회 기간 중 남북한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경란

북한 영화 ‘도라지꽃’은 1987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시대적 배경은 60년대 즈음으로 보인다. 한 노인이 성인이 된 아들을 데리고 산을 넘고 넘어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깊은 산속,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마을, 그곳에서 도시의 멋진 삶을 꿈꾸는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여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연인 대신 여동생과 마을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여자 주인공은 부지런하고 성실함으로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 전기를 끌어들이고 초가지붕을 개량하고 밭을 일구어 가난한 마을을 풍족한 마을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지만 산사태로 죽게 된다. 그 뒤를 이은 여동생이 언니의 뜻을 이어 마을을 더 풍족하게 만들었다는 그리고 연인과 마을을 버리고 떠난 남자 주인공과 그의 아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는 훈훈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도라지꽃은 여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뿌리를 위해 피는 꽃, 도라지꽃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행복보다는 마을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 즉 북한 사회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의미한다. 모든 계몽적 성격을 가진 영화들이 그렇듯 결론은 북한 여성들은 이런 여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영화 중 우리에게도 이런 비슷한 영화가 있었다. 60~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주제로 했던 영화들이다. 우리 영화에서 주인공은 결혼마저 포기한 순종적인 처녀가 아니라 억척스러운 우리네 엄마들이었다. 여성은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슬로건을 몸소 실천하듯 우리네 엄마들은 주인공이 되어 술과 도박, 게으름에 빠져 있는 남편들을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여 논과 밭으로 내보냈고 초가지붕도 개량하고 마을도 깨끗하게 청소하여 잘사는 새마을로 만들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남북한 영화 모두에서 여성들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희망전사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북한 여성들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 대가로 이룰 수 있었던 것에 반해 남한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 즉 무능력한 가장에 대한 질타와 선도를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남한여성들은 여성의 희생보단 남성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고 이를 통해 꿈을 이루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들은 모든 문화권에서 희생의 아이콘이다. 가족을 위해 마을을 위해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상은 특히 국가적 재난과 역경 속에서 요구되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의 여성상을 그리거나 요구하는 영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 도전하여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는 보다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화하고 있다. 반면 북한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이 국가와 집단 그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영웅시하고 이런 삶을 살도록 의식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보다는 사회와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 이것이 북한 사회가 이상화한 여성상이다.

만약 통일이 되어 자신보다는 사회와 집단을 위한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북한 여성과 개인의 행복과 여성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한 여성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서로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다. 동·서독 통일 이후 동독 여성주의자들은 서독여성은 너무 개인주의적이라 비판했고 서독 여성주의자들은 동독 여성들은 너무 집단주의적이라고 서로 비판하면서 한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한다. 아마 우리도 통일 후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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