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의 맏딸…
하와이 출신 첫 한국계 미국인 현앨리스의 비극적 삶
“박헌영 상하이 시절 애인? 사실 아니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현앨리스는 비록 남에선 좌익, 북에선 미국 간첩으로 몰렸지만 강렬한 의지로 삶을 개척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현앨리스는 비록 남에선 좌익, 북에선 미국 간첩으로 몰렸지만 강렬한 의지로 삶을 개척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현앨리스가 살았던 시대는 개인의 의지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없는 분단과 냉전의 시대였어요. 비록 남에선 좌익, 북에선 미국의 간첩으로 몰렸지만 그는 강렬한 의지로 삶을 개척한 운명의 주인공이었지요.”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는 ‘한국판 마타하리’ ‘박헌영의 첫 애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현앨리스(1903∼1956?)의 삶과 비극적 최후를 다룬 책이다. 저자인 정병준(50)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생애사 겸 인물사로 출발했으나 책을 마치고 나니 여성사가 돼 있더라”고 했다.

저자는 여운형, 이승만 등 한국 현대사의 거목에 관한 저작을 잇따라 내놓은 중견 사학자다.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86년께 현앨리스에게 관심을 가진 후 18년의 연구 끝에 책을 내놨다.

그가 처음 박헌영의 재판 기록에서 만난 현앨리스는 미국 시민으로 미 첩보기관에서 일한 간첩이었다. 거기에 박헌영의 상하이 시절 첫 애인이라니…. “냉전시대 여자 스파이라는 외피가 매혹적 상상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런데 미군정 자료에는 뜻밖의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좌익과 소통하는 악마적 존재로 묘사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3·1운동을 이끈 독립투사 현순 목사의 맏딸로 하와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코리안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박헌영뿐 아니라 북한이 이강국을 미국 간첩으로 숙청하는 증거로도 동원됐다. 마흔여섯 살 때 가족을 떠나 체코, 모스크바를 거치는 험난한 여정 끝에 평양에 도착한 한 여성이 왜 ‘이상향’ 북한에서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해야만 했나? 그 삶의 궤적을 따라간 책은 묘한 울림을 안겨준다.

책 제목인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정 교수는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1920년대 초 상하이 시기다.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의 이글거리는 열정과 에너지가 현앨리스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그는 3‧1운동의 후예였고, 나머지 삶은 3‧1운동의 후기였다.

 

현앨리스는 남편 정준과 결별하고 하와이로 건너와 1927년 아들 정웰링턴을 낳았다. 산욕에 시달린 듯 부은 얼굴이지만 행복한 표정이다. ⓒ돌베개
현앨리스는 남편 정준과 결별하고 하와이로 건너와 1927년 아들 정웰링턴을 낳았다. 산욕에 시달린 듯 부은 얼굴이지만 행복한 표정이다. ⓒ돌베개

현앨리스는 여성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북한에선 현미옥이라는 본명으로 여성동맹 기관지 『조선여성』 1950년 4월호에 ‘미국의 로동녀성들’이라는 글을 썼다. 정 교수는 “북한이 현앨리스를 박헌영의 애인으로 몰고 간 것은 추악한 미제 간첩이란 프레임을 덧씌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앨리스가 박헌영의 첫 애인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박헌영은 곧바로 주세죽과 동거에 들어갔고, 그도 정준과 곧 결혼했기 때문이죠. 북한의 주장은 박헌영과 현앨리스가 정치적‧사상적인 면은 물론 윤리적으로도 타락한 인물로 몰기 위해서였죠.”

한국 근현대사는 전통적 질서에서 일본 중심의 질서로, 다시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로 재편되면서 대변동을 경험했다. 남북한 체제가 충돌하던 시기에 현앨리스는 운명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역사와 시대에 바스라진 희생자였다. 그는 뿌리 뽑힌 존재였다. 또 일본 제국의 신민, 미국의 시민, 남한의 국민, 북한의 공민 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책에는 운명이 있는 것 같아요. 현앨리스의 행적을 쫓아 체코에 갔다 많은 자료를 찾았어요. 그가 박헌영, 박헌영의 첫째 부인인 주세죽, 김단야, 호치민 등과 1921년 상하이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한 후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지요.”

 

현앨리스에게만 불행이 닥쳐온 것은 아니다. 평양에서 그가 박헌영 숙청의 희생양으로 마녀사냥이 된 재판정에 섰다면 아들 정웰린턴 역시 체코에서 미국과 북한의 관심 속에 완벽하게 고립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동생들 역시 매카시 광풍이 불던 미국에서 청문회에 불려나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추방되거나 투옥되는 위기에 놓였다. 정 교수는 “냉전의 공포는 전 지구적 현상이었다. 한국전쟁이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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