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현장 이야기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 여성들이 ‘끼어들기’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유리 천장을 부수는 엘리트 여성들과 최저임금의 밑바닥에서 헤매는 여성들이 함께 ‘새판 짜기’에 힘을 모아 새로운 경제구조를 수립할 수 있을 때, 모두가 누리는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필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는 여성운동 전반부가 끼어들기와 새판 짜기의 첫 걸음마였다면, 이를 발판 삼아 새판 짜기를 위한 세력화에 집중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하며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의 포문을 열었다.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가 기획한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는 장필화, 김경희, 차인순, 정영애, 서정순, 문경란, 원미혜, 이미경, 정진주, 김정희, 이안소영, 김엘리, 강선미, 이명선, 노지은 등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15인의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의 위기가 회자하고, 더는 페미니즘은 새로운 담론을 생산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한 이때, 지난 30여 년간 이 땅의 페미니즘 역사와 오늘날 전환 시대를 맞은 페미니즘의 현장을 낱낱이 보여준다.

청와대·국회·지방의회 등에 입성해 거시적인 여성정책·법·제도화를 이루어낸 경험을 비롯해 반성폭력 운동, 여성언론 운동, 여성환경 운동, 여성평화 운동, 여성건강, 살림·마을 운동, 글로벌 국제개발협력, 아시아여성학 등 곳곳의 분야에 진출한 페미니스트들이 그간 이루어낸 성취와 좌절,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진솔하게 써내려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한 의원은 ‘아내 강간죄’ 규정을 들어 ‘이 법은 부인들이 마음 내키면 출근하는 남편의 넥타이를 잡아 경찰서로 가게 하는 법’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그날 국회 공청회의 풍경은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이 얼마나 먼 것인가를 절감하게 했다”고 회상한다.

이제까지의 여성운동은 남성과의 차별에 대항해온 성평등 운동으로서, 주로 여성을 그 대상으로 해왔다. 반면 현재 여성운동의 세계적 추세는 이른바 ‘성 주류화’ 전략으로 장애인, 빈민, 소수자, 동물 등 약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며 국가의 모든 법과 제도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관점으로 이동 중이다.

노지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수석연구원은 “오랫동안 함께해온 많은 학자가 이제 은퇴의 나이에 접어들고 새로운 젊은 세대의 질문은 늘어가지만, 그 사이를 이어갈 허리 세대의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지쳐서 만나기가 어렵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 위에서 낯선 조우를 준비하며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

장필화 외/ 서해문집/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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