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시신 택배 배달 사건이 남긴 것

 

신생아를 살해한 뒤 시신을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낸 혐의로 긴급체포된 이모씨가 6일 전남 나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신생아를 살해한 뒤 시신을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낸 혐의로 긴급체포된 이모씨가 6일 전남 나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수건으로 수갑을 가리고 야구모자에 마스크를 쓴 35세 여성 이모씨의 고개는 자꾸만 아래로 향했다. 자신을 손가락질할 세상의 시선이 무서워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뱃속에 열 달간 품은 생명을 낳은 후 살해하고 영아 시신을 고향의 친정엄마에게 택배로 보낸 자신을 사람들이 용서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금천면 고동리에 거주하는 친정엄마에게 택배를 보낼 때만 해도 ‘빈곤 절벽’에 선 A씨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오직 친엄마만이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 줄 것으로 굳게 믿었다.

전남 나주경찰서는 11일 자신이 낳은 영아를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택배로 보낸 혐의(영아살해 등)로 구속된 이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5월 28일 오전 2시30분께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쪽방 계단에서 딸을 출산한 뒤 입을 막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영아의 시신을 6일 동안 자신의 방에 내버려 뒀다. 그러다가 서울 강동우체국에서 아이의 시신이 담긴 상자를 전남 나주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택배로 보냈다. 택배 상자에는 숨진 영아와 함께 ‘저를 대신하여 이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라는 내용의 메모도 발견됐다. 이씨는 흰색 수건으로 싼 사체를 검정 운동복 바지로 덮어 갈색 핸드백에 넣어 쇼핑백에 담은 다음 택배 상자에 넣어 포장했다. 경찰은 택배가 발송된 서울 강동우체국 CCTV를 분석해 서울 광진구 구의동 한 식당에 숨어 있던 이씨를 지난 5일 검거했다.

나주경찰서 김상수 수사과장은 “엄마에게 미안해서 전화도 못하고 말도 못했더라. 마지막 의지처가 친정엄마였다. 이씨는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친정엄마가 자신을 알 것이라 여겼다”고 전했다.

 

이씨가 시신을 택배로 보내며 동봉한 메모지. “저를 대신하여 이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씨가 시신을 택배로 보내며 동봉한 메모지. “저를 대신하여 이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씨는 고시원에서 살다 구의동 쪽방으로 옮겨 딸을 낳았다. 성인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한 평 반짜리 공간이었다. 배가 불러오면서 일할 데가 마땅찮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씨는 첫 번째 남편과 서류상 이혼만 안 돼 있는 상태였다. 10년 전 헤어진 후 연락이 끊겼다. 그는 7살 난 딸을 친정에 맡긴 채 서울로 상경했다.

지난해 8월쯤 원룸텔에서 당시 자신이 일하던 음식점 점장과 4개월가량 동거하면서 임신했으나 임신인 것도 모른 채 이별했다. 상대남은 아내와 별거 중인 유부남이었다.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겨왔다. 혼자 사는 여자가 출산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이가 울어서 입을 막았는데 죽었다.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전문가들은 이씨 같은 잔인한 모성의 등장은 모성을 지킬 수 없도록 몰아붙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상가족 안에서야 모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생존 가능성도 희박한 극단의 상황에 놓인 여성에게 모성을 기대하는 것은 또 다른 모성신화라는 것이다.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혼외 관계로 아이를 낳은 이씨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며 “늘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 ‘워킹푸어’였고, 결국 고시원에서 쪽방까지 밀려났다. 여성들의 열악한 노동문제, 주택문제, 혼외 관계에서 아이를 낳은 섹슈얼리티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남편이 없는 이씨는 아이와 함께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생존이 어려운 절망으로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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