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fear)와 ‘메르스’’(MERS)를 합친 ‘피어르스’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어
‘정권의 운명’을 걸고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해
국민들도 성숙한 시민의식 발휘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를 방문해 메르스 대응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를 방문해 메르스 대응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연기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국민이 아직 메르스에 대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메르스 조기 종식 등 국민 안전을 챙기기 위한 결정이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출국을 나흘 앞두고 방미 일정을 연기할 만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방미 연기 결정은 메르스 공포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메르스는 국민이 일상생활을 접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고, 지난 4월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방미 이후 조성된 신미·일 우호 관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극히 단선적이고 그동안 박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아무리 중요한 외교 문제라도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국민이 메르스 사태로 불안해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방미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메르스 파동이 한창인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논의하고 결정된 사항이 국민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외교보다 국민 안전이 우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국민의 53.2%가 ‘순방을 연기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예정대로 순방해야 한다’ 39.2%였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방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국민에게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메르스에 대처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민심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미 연기 결정은 박 대통령이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방미 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지금은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를 비판하고, 국민의 책임 없는 행동을 질타할 때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에게 몇 가지 주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17개 시·도지사들과 회동해서 철통 같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주가 ‘진정이냐 확산이냐’를 결정짓는 메르스 사태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긴밀한 협조 체제가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에볼라 감염 환자가 발생하자 일부 주에서는 에볼라 증상이 없더라도 서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의료진과 여행자를 21일간 의무 격리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는 연방정부의 자가 격리 권고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당시에 공화당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우리 (의무격리) 정책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바뀔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이런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이 오히려 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대통령의 말대로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행동하면 효율적이지 못하고 국민의 불안감만 키우기 쉽다. 

둘째, 정부는 메르스 대책 컨트롤 타워 부재론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중앙, 범정부, 민관’ 등 메르스 대책 본부 3개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청와대는 ‘총리 대행이 컨트롤 타워’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안전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전의 개념을 재난과 사고에만 국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간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셋째, 총리대행보다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호소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 뉴욕 등 대형 도시에서 에볼라 확진 환자가 발생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 행동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뜻하는 ‘피어르스’(Fears, 공포 fear와 메르스 MERS를 합친 말)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런 ‘피어르스 현상’을 조기에 제압하기 위해 ‘정권의 운명’을 걸고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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