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육군 전 여단장에게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신문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육군 전 여단장에게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신문

부하 여군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육군 전 여단장(대령·47)이 무죄를 선고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10일 군인 등 준강간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대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A대령은 부하 여군 B(21) 하사를 자신의 관사로 불러 지난해 말부터 지난 1월까지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1월 긴급 체포됐다. 이 사건은 같은 부대 소령의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건을 조사하던 중 밝혀졌다. 사건 당시 B하사는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반면, A대령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육군에 따르면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피고인의 공관에 머물게 된 경위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선물, 대화, 메시지 등 범행 이후의 피해자의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공소 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강압에 의한 성폭행이 아닌 양측의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군 사법당국의 미온적인 처벌 태도가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근절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전체 판결문 내용을 봐야겠지만 공개된 판결문의 내용을 보면 선물, 대화 등을 증거로 채택하고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다는 점 등 성폭행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몇 달간 지속적인 피해가 있었던 상황에서 군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피해자가 지휘관인 피의자와 관계를 단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계 관계가 철저한 군대 문화 속에서 인사권자인 지휘관의 요구를 강력히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판결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군인권센터가 여군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성적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집단 따돌림’(35.3%), ‘가해자 및 상관의 보복’(47%), ‘부대 전출’(17.7%) 등 불이익 때문이었다.

최 사무국장은 “군사재판의 이번 판결은 ‘원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성폭력 문제를 단호하게 처리하겠다던 국방부의 입장과는 다른 것 아니냐”며 “이러한 판결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걸림돌이 되고, 시민들이 군을 믿을 수 없게 하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실제 무죄 판결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판결 내용을 비판하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군사법원이 저러니 군대 내 성폭행이 줄어들 리가 없다”(@che*****), “우리 사회는 왜 유독 성범죄 단죄에는 이토록 관대할까. 포괄적이란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위계에 의한 포괄적 성폭행”(@ddan******) 등 군 사법당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군 검찰은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할 예정이다. 육군도 “사법절차와는 별도로 지휘관과 부하와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징계 절차를 통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A대령은 직위 해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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