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보건당국이 관찰 중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격리 대상자가 366명 늘어나 총 3805명이 늘어난 가운데 방역 관계자, 의료종사자, 외국인 관광객, 일반시민들과 어린이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마스크 쓴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1일 보건당국이 관찰 중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격리 대상자가 366명 늘어나 총 3805명이 늘어난 가운데 방역 관계자, 의료종사자, 외국인 관광객, 일반시민들과 어린이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마스크 쓴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메르스 2차 감염, 3차 감염, 임신부 감염….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의 무능과 불공정성에 대한 불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저급한 시민의식에 대한 국민 사이의 불신, 병원과 관련 단체의 이기주의와 무책임에 대한 불신… 이런 불신이 증폭돼 우리 사회가 결딴날 것만 같다.

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 듯하다. 근대국가는 국민의 기본 생활과 건강, 교육, 문화, 안전, 정보 등을 향유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적극적인 책무를 부과받으며 성립됐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의 임무다. 세계의 인권규약들은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지킬 국가의 엄중한 임무를 지적했으며, 우리 헌법도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1항)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제35조 1항)가 있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국민건강보험과 특별 질병에 대한 의료혜택 등을 발전시켜온 정부가 응급 사태에서는 기대면 무너지는 벽과 같다는 엄청난 허탈감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된 것이다. 세계화가 전방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지금 또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질병이 전염돼 올지 모르는데, 무엇을 믿고 이 위험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공포가 우리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가고 있다. “메르스가 그렇게 무서운 질병은 아니니 도에 넘치는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내용으로 가득찬 정부 홈페이지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국민의 알 권리는 또 어떠한가. 국민이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하고 정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이미 여러 국제인권법과 헌법에도 그 기초가 잡혀 있었지만, 1996년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제정‧공포돼 더욱 공고화된 국민의 기본 권리다. 최초 환자 발생 후 20일 만에, 이미 전염의 물길을 잡기도 힘들어졌을 때 비로소 관련 병원과 환자의 이동 경로를 발표한 것은 도대체 국민을 얼마나 무시한 처사인가. 대형병원들의 이해를 먼저 고려하는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한편 낮은 시민의식은 이번 사태가 번지는 데 불을 붙였다. 인권은 권리와 책무가 단단히 결합돼 구성된 인간 정신 발전의 산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 속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배려해야만 한다는 지혜를 얻은 것이다. 세계인권선언도 개인 권리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서 타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적절한 인정과 존중을 보장하고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 정당한 필요를 충족시키기…”(제29조 1항, 2항)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 헌법도 국민의 권리 사이사이에 여러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당장의 입장 때문에 지나온 병원 이동 경로를 숨기고, 자가 격리를 무시하고 감염 위험을 증폭시키는 여러 행태와 병원들의 이기주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 정부에 그 국민이라는 자조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금 메르스 사태는 정부, 개인, 조직의 상호 신뢰에서 총체적인 파국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인권 존중의 측면에서 형편없는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신속히 병을 잡을 대책이 강구되길 바라는 한편 우리 모두의 권리와 책무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 특단의 교육을 구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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