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식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 홍미은 기자
  • 승인 2018.01.08 16:31
  • 수정 2018-01-08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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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쌓은 요리, 그림, 글
짧지만 강렬한 시에 함께 버무려

우리 어머니는 아픈 아기에게

어미 입에 밥 잘근잘근 씹어 먹이시며

밥 먹어야 힘 난다며 평생 부엌에서 사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도

막내 아들 보며 “조반은 드셨수”

한낮인데 아침밥 걱정이다

-한복선 『조반은 드셨수』 중에서

궁중음식의 대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둘째 딸,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 ㈜대복 회장, 한복선식문화연구원 원장…. 한평생 요리연구가로 살아온 한복선(66·사진) 원장을 소개하는 이름들이다. 요즘은 ‘시인’이 더해진다. 시인 한복선. 2013년 『밥 하는 여자』로 음식 시집을 냈고, 올해 4월 두 번째 시집 『조반은 드셨수』를 펴냈다. 2년 만이다. “평생 너무나 많은 말을 떠들어 나 자신은 오히려 허하고 하늘에 나의 혼이 정착지 못하고 떠도는 것 같았다”는 그는 시에 음식과 인생을 담기 시작했다.

“찬 딸기는 싫다”셨던 늙은 아버지, 생란처럼 달콤하고 매콤하고 얌전하셨던 어머니, 병상에서도 “조반은 드셨수?”라며 막내아들을 챙겼던 시어머니까지. 요리 안에서 살았던 ‘여자 한복선’의 시에는 애잔한 누군가의 인생도 함께 버무려져 있다. 그리움 가득한 시 한 편으로 가슴을 울리는가 하면, ‘은근슬쩍 숨어 살게 된’ MSG의 고백이 담긴 ‘내연의 MSG’처럼 도발적(?)이고 솔직한 시로 위트 또한 가득하다. 따뜻한 햇볕이 장독대를 데우던 어느 봄날, 언니 한복려씨가 운영하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시인 한복선과 마주했다.

 

한복선 궁중음식연구가 ⓒ이정실 사진기자
한복선 궁중음식연구가 ⓒ이정실 사진기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시를 쓰시는 이유가 궁금하다.

“매일 음식 얘기를 하고, 요리책도 많이 썼는데 거기엔 나의 감성이 들어갈 수가 없더라. 강의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날아가 버리면 그만이다. 음식 안에는 문화, 역사, 철학, 인문학처럼 모든 영역이 다 들어 있다. 첫째는 사람이 그 안에 있다. 그것을 긴 얘기, 긴 문장보다는 짤막한 시의 형식을 빌려 쓰고 싶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다만 시를 모르니까 시 공부를 시작했다. 소재는 무궁무진했지만, 소재를 어떻게 표현할지 공부했다. ‘유자이고 싶다’는 시에서 유자는 동양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가시가 있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신여성을 표현했다. 그렇게 여성으로서 나의 바람을 담으면 또 유자로 만들 수 있는 유자화채가 떠오르고 ‘아, 엄마는 이렇게 만드셨었는데’ 하면서 엄마에 대한 추억으로 자연스레 연결됐다. 어떤 분은 시를 읽고 그러더라. ‘저는 여기에 참기름을 넣는데 선생님은 왜 빼세요?’ 두 줄 시에 맞추다 보니 뺐는데 그것까지 묻더라.(웃음) 저마다 시선이 다 다르다.”

-‘조반은 드셨수’가 친정어머니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하더라. 사실 우리 시어머님의 말씀이다. 남편은 9형제다. 그런데 작은 부인에게서 또 8형제를 보셔서 모두 17명의 형제가 있다. 신랑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등본을 떼어 오라고 하면 창피해서 못 해갔다고 그러더라. 그때는 면서기가 직접 손으로 다 쓰지 않았나. 책 한 권이 나왔다고 하더라. 큰집인 우리 시어머니가 낳은 9번째 막내아들이 남편이다. 남편은 ‘엄마’ 소리만 나오면 우는 사람이다. 막내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병실에 계셨는데 정신이 잠깐 드신 어머니가 남편에게 ‘조반은 드셨수’ 그러시는 거다. 오락가락하시면서도 밥을 챙겨주시더라. 모든 한국의 어머니는 늘 밥 걱정이다.”

-결혼을 일찍 하셨다.

“대학교 4학년 때 12월에 결혼을 하고, 졸업은 2월에 했다. 기와집에 양조장 집으로 시집갔는데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 나까지 5명이 함께 살았다. 옛날에는 장가간 아들하고는 겸상을 안 했지만, 우리는 약식이니까 시아버지하고 막 결혼한 초짜 신랑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 그 밥상을 받아서 여자 셋이 밥을 먹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맛있는 반찬을 꼭 하루 묵혔다 먹더라. 시할머니는 밥상에 올리지도 않고 방바닥에 내려놓고 드셨다. 신식이던 엄마 밑에서 핵가족으로 자라다가 그런 건 처음 봤다. 시할머니가 맛있는 반찬도 못 먹게 하고 상에 올리지도 않으신다고 남편한테 일렀더니 그 다음 날 바로 5명이 두레반에 둘러앉아 먹었다. 남편이 다 감싸줬다. 시할머니가 막내인 손자 눈치는 보셨던 거다. 신랑하고 1년 반 만에 미국으로 떠났다. 시집에서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한 추억으로 남았다.”

 

한 원장이 취미로 그린 민화를 얹어 엮어낸 음식시집 조반은 드셨수
한 원장이 취미로 그린 민화를 얹어 엮어낸 음식시집 '조반은 드셨수'
-‘딸기코 아버지’ ‘아버지 딸기’ 등 아버지에 대한 시가 많다.

“친정아버지는 한국의 칸트다. 신사였다. 내가 결혼할 때 ‘서로 존중하라’는 딱 한 말씀만 하셨다.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신 선생님이셨지만, 엄마가 돈 벌어서 우릴 키웠지 아버지는 경제관념이 없으셨다. 우리가 5형제인데 장남인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산악반 지리산 등반 도중 조난을 당해 하늘로 갔다. 부모님은 덕산이라는 고향 땅에 오빠를 묻으셨고, 아버지는 그때 다 놓으시고 산으로 가셨다. 본인에겐 4명의 아이를 먹이고, 공부시켜야겠다는 관념도 없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아예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웃음) 우리 엄마 또래에는 6·25 과부들이 많아서 우리 엄마도 그런 줄 알았다. 엄마가 우리 4명을 다 키웠다.”

-어머니가 고생하셔서 아버지에게 서운하진 않았나.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나도 모르게 ‘아버지 사랑해’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 잘하지 못한 게 생각났다. ‘아버지 딸기’에도 썼지만, 딸기를 데워달라고 하시더라. 그땐 왜 따뜻한 딸기를 원하시나 이상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알겠더라. 찬물보다 따뜻한 물이 좋더라. 편찮으시니 찬 게 싫으셨던 거다. 아버지께 무심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정말로. 경제적인 부분은 책임지지 않으셨지만, 우리를 반듯하게 키우셨다. 엄마는 즐겁게 일하셨던 것 같다. 나는 생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벌이에 대해 구분 지어 얘기하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버지는 맑은 영혼을 가진 분이었다. 그분의 피가 욕심 없이 사는 우리 형제들에게 흐르고 있고, 엄마는 평생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가업을 주셨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기질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작은 황 선생’으로 불릴 만큼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딸이기도 하다.

“엄마에게는 예지로움이 있으셨다. 전통음식이 우리의 큰 문화가 될 거라는 걸 아셨다. 엄마는 13세에 일본 유학을 떠나 20세 즈음 돌아오셔서 숙명여전에 취직하셨다. 일본 교장이 한국 음식을 가르치라고 했는데 일본 영양학, 서양 영양학만 배워왔으니 못하셨던 거다. 그런 엄마를 창덕궁 낙선재에서 윤비를 모시고 있던 한희순 상궁에게 소개해줬다. 엄마는 한 상궁과 숙명여전에서 궁중음식이라는 과목을 만들었다. 한 상궁은 글을 모르셨기 때문에 엄마가 모든 요리법을 계량화하셨다. 요리를 직접 배우며, 조리법을 정리하신 거다. 최초의 조선왕조 궁중음식 책이 그렇게 나왔고,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제38호에 등록됐다. 한 상궁은 1년 만에 돌아가셨다.”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어 오셨다.

“엄마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 했고, 거의 매일 우리를 두고 다니셔서 크면 일을 안 하려고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정말 작고 뒤웅박만 한 초가집에 살림만 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 팔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차곡차곡 일을 해오다가 마흔에 ‘오늘의 요리’ 방송을 하게 됐다. 엄마가 항상 그러셨듯이 반은 이론, 반은 실기를 진행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상식을 전달한 게 인기 비결이었다. 가정 요리라면 동서남북 어느 나라 요리든지 다 연구하고 연습해서 방송했다. 방송일은 나에게 잘 맞았다. 내가 아주 친절하게 방송을 하니까 엄마가 ‘할 말만 해라’라고 그러시더라. ‘엄마, 나는 선생님으로만 서 있는 게 아니라 주부로서 필요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난다. 엄마는 2006년에 돌아가셨다.”

 

한 원장은 골고루 즐기며 먹는 것이 약선의 첫 번째 조항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한 원장은 골고루 즐기며 먹는 것이 약선의 첫 번째 조항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내연의 MSG’ 시가 재밌다. 선생님 부엌에도 MSG가 있다니 의외다.

“나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된장국 같은 음식은 조금 쓴맛이 있다. 그때 조미료를 조금 넣으면 최고다. 나는 건강 상식에 대해 무심한 편이다. 안 먹으면 안 먹는 거고, 먹으면 먹는 거다. 선을 그어서 이건 먹어야 하고, 저건 먹지 말아야 하고 그런 거 없다. ‘오늘의 영양학이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딱 맞다. 언제는 커피가 안 좋다고 했다가 좋다고 하고, 와인도 그렇지 않았나. 사람은 수치에 움직인다. 하지만 내 몸에 대한 관찰을 통해 나에게 맞는 걸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다더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음식은 결국 안 먹는 것보다는 즐기는 게 낫다. 골고루 즐기면서 여러 가지로 먹는다. 약선의 첫째는 ‘골고루 먹기’다.”

-한식만 드시는 줄 알았다.

“우리 집은 아침에 빵을 먹는다. 남편은 올해 70인데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엔지니어로 요즘도 회사에 다니는데 ‘점심에 뭐 자셨수’ 물어보고 한식을 먹었다고 하면 저녁은 간단하게 국수, 누룽지처럼 골고루 되는 대로 먹는다. 아침에는 내가 먼저 나올 때가 많다. 남편은 맥모닝(맥도널드 아침 메뉴)을 좋아한다. 난 사과하고 토마토만 챙겨 놓고 나온다. 본인은 맥모닝을 패스트푸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채소로 부족할 수 있는 영양소만 채우면 되는 거다. 나보다 영양학을 더 잘 아는 사람이다. 본인이 좋아하는데 무슨 상관인가. 알면 더 자유롭다. 토막 상식 가지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엄마도 그러셨다. 한번은 방송국에서 아침에 촬영을 왔는데 우리가 토스트를 먹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기절했다. 우리 엄마가 토스트를 자신다고.(웃음)”

-전통 민화도 그리신다. 시와 잘 어울린다.

“궁중음식과 전통음식을 하려면 배경이 필요하다. 전시회도 그렇고. 민화는 실용성에서 시작한 거다. 유화도 그려봤지만, 유화는 완성이 안 되더라. 민화는 완성의 그림이 나왔다. 형태만 잡히면 감성으로 얼마든지 색을 낼 수 있다. 민화의 매력은 물 바림이다. 한지에 저절로 스미면서 퍼지는 매력이 있다. 색감도 맛있는 느낌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음식과 맛에 어울리는 표현을 찾는다. 음식의 양념이 물감이라고 생각한다. 설탕으로 단맛을 조절하듯 물감을 섞어가며 맛을 낸다. 요리책을 많이 썼고, 말도 많이 했고, 그림도 그려왔으니 그것들을 묶어 낸 것이다. 40여 년간 쌓아온 것들이 어우러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열등감이 많았다. 남의 것은 다 높아 보이고 내 것은 작아 보였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용감하긴 하다. 주저하지 않는 게 나의 장점이다.”

-요리, 그림, 시, 방송까지 참 다양한 일을 하신다.

“대학 시절 엄마 밑에서 수업을 들으며 식품영양학을 공부했고, 미국 가기 전에는 궁중음식 조수로 있었다. 미국에서는 서양 요리를 공부하고 자식 둘 키우고 와서 방송 일을 했다. 책도 만들었고, 엄마로부터 독립해서 요리학원도 10년 동안 했다. 사람들이 궁중음식에서 보양식은 무엇이 있느냐고 궁금해하기에 약선 음식도 공부하게 됐다. 학원을 하다 보니까 외식경영 공부도 하게 되더라. 사회가 나를 변화시켜 왔다. 사회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고여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리 엄마가 흉을 보셨다. ‘용두사미’라고. 그 정도로 안 배운 게 없다. 뭐든지 다 배웠다. 춤, 노래, 그림 다 배웠지만, 음악에는 소질이 없더라. 노래를 못 한다.(웃음) 재미를 위해 산다. 재미없으면 안 한다.”

-늘 바쁘게 사시는 것 같다. 세 번째 시집도 나오나.

“절대로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싶다. 그림도 계속 그리면서 또 한 번 시집을 낼 수 있다면 거기에 붙이고 싶다. 책을 내면 인세가 나온다 해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 조금씩 적금을 들어놨었다. 이번에도 적금을 타서 책을 낸 거다. 이제부터 또 시작이다. 언제 할지 모르지만, 적금을 또 시작했다. 어떤 분은 내가 홈쇼핑 방송에 나오는 게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 상업적으로 내가 팔리는 게 싫다는 거다. 하지만 나를 밥 먹여주는 것은 그거다. 그걸 안 하고서 책만 쓸 수 있나. 생활을 떠나는 건 있을 수 없다. 돈이 있어야 생활도 있다. 한식만 먹으면서 요리를 연구하며 우아하게 살 거로 생각하지만 난 모든 게 중용이다. 한복을 즐겨 입지만, 머리는 쇼트커트인 것처럼. 고전 일을 하지만 신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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