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기 맞아 ‘시대를 밝힌 자랑스러운 변호사 조영래 기념사업’ 출범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등 여성인권 신장에도 앞장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시대를 함께한 기억들
권영국 변호사, 서기호 의원… 그의 뜻을 따르고 추모하는 후배들

 

고 조영래 변호사
고 조영래 변호사

“내가 지키려고 하는 첫 번째는 피의자 또는 참고인 가족들에게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조영래. 1981년 사법연수원에서-

조영래 변호사는 우리 사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법정에 섰다. 그가 떠난 지 25년이 흐른 지금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그의 25주기를 앞두고 ‘시대를 밝힌 자랑스러운 변호사 조영래 기념사업’ 출범한다. 또 ‘조영래인권상’을 제정,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기여한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를 시상하기로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민주화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선배 변호사들을 재조명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변호사를 선정, 추모하기로 했다”며 “이번 조영래 변호사 기념사업을 통해 변호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고취하고 법조인들의 화합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12월에 열리는 기념사업은 조영래 변호사의 사진 및 자필 문서 등을 전시하고 후배 변호사들의 추모글, 발표되지 않았던 미공개 자료를 수록한 기념책자가 제작‧배포될 예정이다.

여성인권 신장에 앞장섰던 조영래

조영래 변호사는 1984년 망원동 수재사건의 집단소송, 1986년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1987년 상봉동 진폐증 사건 등 시국사건뿐만 아니라 노동, 언론, 환경, 여성차별사건 등 다양한 인권 관련 사건을 변론해왔다.

조 변호사는 여성인권 신장에도 큰 기여를 했는데 그 중 한 사건이 바로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사건이다. 1985년 서울민사지방법원은 당시 미혼 여성 이경숙씨가 제기한 교통사고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만 26세까지만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당시 국내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이 26세라는 이유에서다. 여성계는 사법부가 여성의 결혼퇴직제를 정당화했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조 변호사는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았다. 그는 결혼퇴직제와 조기정년제에 대한 연구자료를 수집하고 장문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변론을 펼쳤다. 이같은 노력으로 ‘여성도 55세 때까지 근무하는 것을 전재로 일일 실수익을 산정해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여성신문은 1989년 1월 20일자 신문에서 전화교환원 김영희씨의 여성 조기 정년퇴직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며 조 변호사가 맡았던 이경숙 씨의 사건을 ‘성차별 정년 문제가 법정투쟁으로 이어진 첫 번째 승소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위) 1989년 6월 30일자 여성신문 30호에서 다룬 부천서 성고문 사건 기사. (아래)여성신문은 1989년 1월 20일자에서 여성 조기 정년퇴직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며 조 변호사가 맡았던 이경숙 씨의 사건을 ‘성차별 정년 문제가 법정투쟁으로 이어진 첫 번째 승소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위) 1989년 6월 30일자 여성신문 30호에서 다룬 '부천서 성고문 사건' 기사. (아래)여성신문은 1989년 1월 20일자에서 여성 조기 정년퇴직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며 조 변호사가 맡았던 이경숙 씨의 사건을 ‘성차별 정년 문제가 법정투쟁으로 이어진 첫 번째 승소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여성신문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조영래 변호사가 맡은 대표적 사건이다.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로 시작되는 변론요지서를 모르는 법조인이 없을 정도다. 조 변호사는 당시 ‘정법회(전두환정권 후반에 출현한 인권변호사 조직)’ 변호사들을 통해 사건을 전해 듣고 변론을 결심한다. 당시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의 저서에서 ‘조 변호사가 이 사건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여성신문 역시 1989년 6월 30일자 30호에서 이 사건을 전했다. 조 변호사는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것은 물론 가해자 문귀동 씨의 징역형 선고를 끌어냈다.

조영래를 기억하는 사람들

여성신문은 조영래 변호사의 25주기를 맞아 그와 함께했던, 혹은 그를 기억하는 전‧현직 법조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과거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활동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조영래 변호사가 갔던 길을 걷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 또 전직 판사 출신 서기호 정의당 의원에게 우리 사회가 조영래 변호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타까운 삶, 그의 병명은 ‘시대암’”

박원순 서울시장은 변호사 시절 조영래 변호사의 대표적 사건 ‘부천 성고문 사건’의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박 시장은 인권변호의 역사를 다룬 그의 저서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에서 조 변호사를 ‘인권변호사의 전설’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기념사업을 통해 조 변호사의 삶을 떠올려 본다는 박 시장은 “조영래 변호사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상식과 원칙이 사회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지배하는 세상을 꿈꿨다”며 “그가 전 생애를 걸쳐 이뤘던 모든 활동이 이 같은 청사진을 위한 헌신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번 기념사업은 그 분의 활동과 정신에서 비롯된 가치가 사라져가는 이 시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박 시장은 지금도 혼자 묵상을 할 때면 스승이자 선배인 조영래 변호사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부천 성고문사건과 여성 조기정년 철폐 사건 등을 맡으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인권을 옹호하는 조 변호사를 통해 열정과 포용력 등을 배웠다”며 “지금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와 부닥칠 때마다 ‘조영래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43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조 변호사에 대해 “때 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던 모든 분들이 내린 조 변호사의 병명이 ‘시대암’이었던 것에 동의한다”며 “조 변호사의 깊은 인류애에 대한 여전한 그리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약자들의 삶 개선에 앞장선 분”

과거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조영래 변호사와 인연이 깊다. 이 시장은 경기도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후 경기도 이천시와 광주시에서 노동 상담소장으로 활동하며 주로 시국·노동 사건 등을 변론했다. 이 시장이 인권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준 사람 역시 조영래 변호사다.

이 시장은 조영래 변호사를 “출세하고 인정받는 기득권 길을 버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가 되도록 애쓰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조 변호사님이 맡은 ‘망원동 수재사건’ 재판 준비를 도와드린 적 있다”며 “연수원을 수료하고 성남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했는데 당시 돈이 없었다. 그때 조 변호사님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며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이 시장은 “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인권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발전했다고 하지만 최근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과 이번 기념사업이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민주주의라는 것은 한 번 확보했다고 영원한 게 아니다. 끊임없는 투쟁과 희생이 없으면 지켜지지 조차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념사업을 통해 조영래 변호사가 지키고자 했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우리 사회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 ⓒ뉴시스·여성신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 ⓒ뉴시스·여성신문

권영국 변호사 “법리에서 누구보다 뛰어났던 분”

조영래 변호사는 현장을 중시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연행 전문 변호사’, ‘거리의 변호사’로 불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조영래 변호사와 닮은 점이 많다. 권 변호사는 두 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다. 첫째는 지난 2013년 대한문 집회 당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두 번째는 지난 4월 세월호 1주기 집회에서 인권침해감시활동 중 연행되면서다.

권 변호사는 조영래 변호사에 대해 “정권에 맞서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인권옹호 활동을 하셨던 분”이라며 “현직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변호사 상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번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변호사는 인권운동뿐 아니라 법리 부분에서도 누구도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며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자행됐던 인권침해 사항들을 폭로하고 그 잘못을 변호사의 전문성을 살려 목소리를 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최근 전교조의 헌재 결정이라든지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두고 벌이는 정치권의 행태 등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침해 사례들이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며 “현직 변호사를 상대로 한 ‘조영래인권상’ 역시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변호사상을 다시 정립을 하자’는 취지가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권 변호사가 마지막에 덧붙인 변호사법 1조는 조 변호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변호사법 1조는 ‘변호사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고 돼있어요. 조영래 변호사가 걸었던 길을 보면 이 두 가지에 매우 부합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죠.” 

 

서기호 정의당 의원
서기호 정의당 의원

서기호 의원 “잘못에 대한 참회 중요히 여겨”

2000~2012년 판사로 재직했던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조영래 변호사는 그가 사법연수원에서 남겼던 말처럼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너그러울 줄 알던 분”이라며 “법이 어렵다보니 누군가의 입맛대로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국민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변호사의 역할이 절실한 요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조 변호사님은 사건에 대한 진실은 물론 그에 대한 참회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법조인”이라며 “최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의 인사청문회를 두고 ‘1987년 현장이 재연됐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과거에 대한 참회가 없으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조 변호사는 물난리로 집을 잃은 수재민, 성고문 사건 피해자 등 남 들이 어려워했던 사건들을 맡고 밤을 새워 변론을 준비하던 변호사”라며 “그분처럼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봄은 올 것”이라고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추모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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