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국립오페라 ‘가면무도회’ 지휘
드레스덴 젬퍼오페라서도 지휘봉 든다
“나이가 어린 데다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이 든 단원들이 자기들 하는 대로 내버려두라고 덤빌 때도 있어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요령이 붙어서 얘기를 들어주면서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말 한마디에서 만만찮은 내공이 느껴진다. 오페라 지휘자 김은선(35)씨 얘기다. 그가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데뷔한다. 김씨는 오는 10월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지휘한다. 14일을 시작으로 17일, 21일, 24일 등 네 차례에 걸쳐 지휘봉을 잡는다. 베를린 국립오페라는 1742년 왕립 오페라극장으로 문을 연 273년 역사의 유럽 정상급 극장이다. 세계적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1992년부터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앞서 9월부터는 드레스덴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인 젬퍼 오페라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지휘를 맡는다. 이 극장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도 5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김은선은 9월 초부터 스톡홀름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나비부인’도 지휘한다. 연말 프랑크푸르트 극장에선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지휘에도 도전한다.
올 한 해가 숨가쁠 만큼 바쁜 일정의 연속이다. 음악계에서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여성 지휘자는 극히 드문 가운데 세계적 지휘자로 꼽히는 정명훈의 30대 시절 경력을 웃돌 만큼 화려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씨는 2013년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는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지휘로 전향한 그는 2008년 스페인에서 열린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국제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해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립 오페라극장(테아트로 레알)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국립오페라단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클래식 오페레타 ‘박쥐’를 지휘했다.
김씨는 “인종·연령·성차별이 없다는 유럽에서도 여성, 아시아인, 나이가 젊은 사람이 지휘자로 활동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며 “높은 수준의 지휘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