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학자 꿈꾸던 리서치 회사 대표 노인복지 전문가로
리서치·컨설팅을 노인복지로 확장해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농학자를 꿈꾸던 청년은 호주 유학 후 기업 컨설팅에 눈을 떴고,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실버타운 전문가로 거듭났다. 노인복지 전문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이한세(54)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의 학창 시절 꿈은 농부였다. 최현옥 박사의 ‘통일벼’ 관련 기사가 계기였다. 목표대로 농대에 진학했고, 군 전역 후 휴학을 하고 작물유전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호주로 떠났다. 유학은 전환점이 됐다. “연구실 실험보다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외향적인 성격 덕에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죠.”
그는 1995년 귀국 후 주한 호주대사관 무역대표부에 취직했다. 이 시절 유통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관련 업계에 직접 뛰어들기 위해 1999년 홍콩에 본사를 둔 AMI 시장조사팀장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 대표는 그 이듬해에 ITT 컨설팅 회사를 직접 설립했다. 이후 우연히 AMI 재직 시절 싱가포르 팀장으로 함께 일한 레온 페레라씨가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을 설립한 사실을 접하고 2년 정도 협업을 진행했다. 2002년 6월부터는 양사가 합병해 이 대표는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한국 대표를 맡았다. 올해 15주년을 맞은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은 일본, 인도네이사, 베트남,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한국은 지사 개념이 아닌 이 대표의 독자적인 브랜드로 활동 중이다.
이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진출 시 시장조사와 제품 유통구조, 진출국의 문화 등을 조사·컨설팅하고 있다. 또한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사전 편찬 작업에 7년째 참여 중이다. 매년 1000개의 직업을 업데이트하는 작업으로, 이 중에는 향후 각광받을 직업들이 소개돼 있다. 2012년에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의뢰를 받아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30개 직업을 조사하기도 했다.
기업 컨설팅을 하던 이한세 대표가 노인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아버지는 실버타운 입주 2주를 앞두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점심도 직접 드시고 걸어 다니시는 데도 문제가 없었는데 몸에 이상을 느끼고 5분 만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좀 더 일찍 실버타운에 모셨다면 더 오래 사셨을 겁니다.”
당시 이 대표는 아버지가 입소할 실버타운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입소자에게 맞는 곳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정확한 정보도 부족했다. “실버타운이란 용어가 법률용어가 아니다 보니 최고급 노인 주거시설과 요양원, 요양병원도 실버타운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정리가 필요했죠. 조사를 통해 정확한 개념의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곳을 찾아 사람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해 출간된 『실버타운 간 시어머니 양로원 간 친정엄마』다. 이 대표는 이 책에서 실버타운을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 없이 입주민 자비로 운영되는 휴양‧여가‧의료 서비스를 갖춘 주거시설’이라고 정의했다. 10개월 동안 이에 적합한 실버타운 30곳을 찾았다. 그는 조사팀을 꾸려 손님으로 가장, 전국의 실버타운을 방문했다. 실버타운을 고민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버타운 간 시어머니 양로원 간 친정엄마』는 이제 필독서가 됐다.
“아직도 실버타운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요. 실버타운이 중산층 노인들이 생활하는 곳이긴 하지만 결코 요양원과 요양병원보다 비싸지 않아요. 실버타운은 한 달 3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다양한데 서울이 아니라면 월 100만원으로도 괜찮은 곳에 갈 수 있죠. 반면 요양원은 유료도 있고 정부 지원을 받는 곳도 있지만, 이마저도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사람만 적용되죠. 요양병원은 개인 부담금으로 한 달에 40만~50만원을 지급하지만 간병인은 따로 고용해야 한고, 일대일 간병인의 경우 최소 250만원이 듭니다.”
그는 부모를 시설에 보낸다고 하면 시선이 곱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그건 자식들 입장”이라고 말한다. “부모 입장에서 그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혼자가 아닌 실버타운 등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지죠. 평균수명이 9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강한 분은 돌아가시기 전 1년가량만 아프십니다. 건강할 때 실버타운에 모시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노인복지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관련 상담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대표를 찾는다. 로봇 개발 회사에 생활로봇과 실버로봇의 개발 자문을 하기도 한다. 실버타운 전문가로 방송에도 출연한 그는 곧 올해 안에 요양원·요양병원과 관련한 정보서도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향후 실버산업과 노인복지 출판 브랜드도 구상 중이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정보서 역시 실버타운 정보서와 마찬가지로 시설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필수 정보를 전문으로 제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