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우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가 해결되고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고 이웃을 도울 수도 있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다. 돈은 우리 사회의 생명줄과도 같다. 그런데 이 말은 북한에서 탈출한 지 1년도 안 된 한 탈북 여성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은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이다.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 북한, 참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말이다.

북한에서 개인이 돈을 ‘많이’ 버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내가 장사를 크게 하거나 아니면 남편이 돈을 갈취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으면 된다고 한다. 물론 큰 부자는 권력에서 나온다. 시장이나 장마당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권력기관들은 준조세의 형태로 뇌물을 받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돈을 버는 구조는 체제의 특성상 여성만이 장사를 할 수 있어 마치 여성이 번 돈을 남성이 기생해서 먹고 사는 이상한 형국이다. 여성들은 장사에 대한 인허가를 받기 위해 인민반이나 여맹, 안전원, 지도원 등 내각, 군, 당 등과 같은 관련된 모든 권력기관에 정기적으로 상납을 해야 하고 이런 권력기관들은 대부분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국가가 아닌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들의 장사 능력과 수완에 달려있다. 엄마들이 부지런하고 고생스러울수록 가족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가 풍족해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무상 교육은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실질적으로 학교 운영비는 국가가 아닌 학부모의 주머닛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만큼 학교생활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무상 배급을 통해 국가가 담당했던 역할을 이젠 여성들이 시장경제를 통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에 대한 북한 사회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시장을 통해 돈을 버는 여성들의 영향력 또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북한 사회의 변화의 물꼬가 북한 여성들에 의해 트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가족 내에서 북한 여성들의 경제적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북한 여성들의 정신적·육체적 수고로움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는 중책이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보태지면서 북한 여성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에서의 남녀관계에 작은 변화들이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사분담에 대한 남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여성들이 장사로 가족생계를 책임지면서 남편들이 금남의 영역인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젊은 여성들은 아내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남자를 최고의 남편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또 여성들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비율도 높아졌다고 한다. 그동안 가부장적 전통이나 미덕으로 여겼던 것들에 대한 북한 여성들의 문제 제기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없던 양성평등 의식이 갑자기 생겨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하는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인 아내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나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가족의 생존을 위해 뛰어든 시장이 북한 사회의 가족 관계, 즉 가족 내의 남녀 관계에 적잖은 변화들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않아 북한에는 여성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녀들이 북한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공동 연대를 하자고 제의할 날도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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