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면 세화리 1487㎡ 대지에 빨간 기와 인 2층 현대식 건물 지어
“제주도에 행복나눔 125 본격화되면 감사 나눔 운동 거점으로 쓰겠다”
“근육이 위축되는 근이영양증입니다.” 아들이 희귀 난치병을 앓는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서른 살 젊은 아버지는 숨이 턱 막혔다.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에게 목숨보다 더 귀한 분신이었다. 홀어머니는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그를 키웠다. 고단한 세월이었다. 이제야 아무 걱정 없다 싶었는데 중증 장애아가 태어나다니…. 그 현실을 맨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매일 밤 술을 들이켰다.
“일주일을 그러고 다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자’고 결심했어요. 그래도 불편한 마음이 어떻게 한 자락도 없었겠어요?” 그후 30년이 흘렀다. 지난달 30일 서울 가산동 천지세무법인에서 만난 동훈(30)씨는 전동휠체어를 탄 채 “안녕하세요”라고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약간 날카로운 눈매까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박점식(60) 천지세무법인 회장은 “동훈이를 내 삶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 친구 덕에 내가 자제하고 인내한 것이 나를 단단하게 키워줬어요. 만약 우리 집에 정상아가 태어났다면 내가 행복했을까요? 기고만장해지고 가볍게 처신하다 어떤 불행을 겪었을지 아무도 모르지요.”
그는 뇌 장애를 앓는 아들을 유명한 작곡가로 키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이야기를 꺼냈다. 작가의 자전소설 『개인적인 체험』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있는 말인데, 아이에 대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오는 아이를 맞아들이는 일뿐이야. (중략) 아버지라고 해서 타인의 생명을 거부하는 에고이즘이 허용되는 걸까?”
박 회장은 “중증 장애를 앓는 아들이 인생의 스승이었다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에 나 역시 100% 공감한다”며 “내게 다가온 시련조차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한없는 불행만은 아니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동훈씨가 딴 세무회계 3급 합격증을 보여줬다. “방금 전에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 역시 내 아들이다 싶더군요.(웃음)”
‘감사 운동 전도사’인 그가 2013년 10월 제주도 표선면 세화리에 ‘감사 나눔의 터-동훈이네 집’을 지은 것도 감사의 가치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1487㎡(450평)의 대지에 빨간 기와를 인 2층짜리 동훈이네 집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탔다. 표선 해비치 해변이 가까이에 있는 이곳은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박 회장은 지난 1월 평화복지재단 작업장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 30명을 2박3일간 초대해 작은 음악회를 열었고, 세화리 동네 주민들도 초청해 국악 공연도 가졌다.
“중증 장애를 앓는 아들이 가족의 짐이 아니라 축복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앞으로 제주도에서 사단법인 행복나눔125 활동이 본격화되면 동훈이네 집을 제주도의 감사운동 거점으로 쓸 계획이에요.” 그는 현재 행복나눔125 감사를 맡고 있다.
그가 감사 경영을 시작한 것은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일으켜 소통하고 공감하는 직장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감사 경영은 뜻밖에 가정의 변화로 이어졌다. “일에 빠져 지내니 어느 순간 집안에서 아버지는 섬 같은 존재가 돼 있더군요. 엄마와 아들 동훈, 딸 수현이는 말다툼을 해도 친한데 저는 좀체 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족 여행을 가고 좋은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줬으니 평균 이상의 아빠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동훈이에게 물었더니 “아빠로선 낙제점”이라는 의외의 말을 했다.
충격이 컸다. 그제야 아버지로서 사랑을 베푼 것일 뿐 공감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그 뒤부터는 자녀의 눈으로 부자 관계를 바라봤다. 자신의 의지대로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하려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세무법인에서 재택 근무를 시작한 동훈씨가 일에 재미를 붙여 “매일 출근하겠다”고 결심하는 대형 사건이 생겼다. 꿈도 꾸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됐다. 그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감사는 자연스레 나눔으로 이어졌다. 그는 2010년 1억원 이상 개인 고액 기부자인 아너소사이어티의 18번째 회원이 됐다. 지난해에는 장애 어린이 재활병원을 짓는 푸르메재단에 1억원 이상 기부하는 ‘더미라클스(기적을 만드는 사람들)’ 첫 회원이 됐다. 동훈씨 덕에 푸르메재단과의 인연이 깊다. 7년간 꾸준히 정기 기부도 하고, 6000만원을 한꺼번에 기탁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자녀의 생일 때마다 감사편지를 써서 준다. 부모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아이들이 스파 이용권을 선물한다기에 ‘엄마, 아빠 축하해요, 사랑해요’ 하면서 부모 품에 안기면 충분하다’고 말해줬어요.” 그는 “아들이 준 감사편지 200통, 딸의 감사편지 150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홀히 대할 때가 많아요. 어버이날에 효도 선물과 함께 감사 편지를 직접 써서 드리세요. 감사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