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적이지 않은 남자들, TV에서 수다 떨고 육아하고 러브라인 상황극
‘여성 없는 여성친화적’ 예능, 여성들이 왜 즐겨 볼까
최근에야 공론화되기 시작했지만 주말 황금시간대 TV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가 사라진 것은 오래된 일이다. 슈퍼‘맨’과 런닝‘맨’과 식스‘맨’과 진짜 ‘사나이’ 등 공중파 예능뿐 아니라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비정상회담’ ‘냉장고를 부탁해’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들은 모조리 남성이다.
TV가 여성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일까? 뻔해 보이는 이 질문의 답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개국 초기에 공중파 예능의 틈새시장이 선정성이라고 생각했던 예능 전문 방송국인 tvN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이 잔뜩 출연하는 게임쇼를 기획했는데,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에 말이 세고 서로 공격하기 좋아하는 캐릭터로 꾸며진 여성들을 모은 쇼를 방송했는데 비키니 여성들보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화제작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tvN은 남성 연예인들에게 요리를 하게 하거나, 살림살이를 시키거나, 여행을 떠나게 해서 사회적 파급력이 큰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키니 여성들의 게임쇼나 여성들끼리의 싸움을 부추기는 방송을 할 때보다는 출연자의 성비 불균형이 심해졌지만, 어떤 의미에서 tvN의 예능은 ‘여성화’된 것이다.
tvN을 예로 들기는 했지만, 최근 히트 예능 프로그램의 공식은 비슷하다.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는 남자들을 모아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이 아닌 과제들과 캐릭터를 부여한다. 이 위협적이지 않은 남자들은 TV에서 수다를 떨고 아이를 보고 소꿉놀이 같은 러브라인 상황극을 하면서 허술하지만 다정하고 정감 있는 역할들을 수행한다. 셰프가 나오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 때 한국 방송가에서 참고한 것은 거친 ‘고든 램지’ 스타일이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 방송가에서 자리를 잡고 유명인이 된 셰프들은 수줍거나 귀여운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 ‘여성 없는 여성 친화적’ 남성 엔터테이너들은 여성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현재 주류의 대중문화에서 거침없는 남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상품으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모 연예매체의 기자가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한 장동민을 두둔하면서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자들 눈치를 너무 본다고 ‘비난’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말의 현실 인식에 기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인터넷상에서 현재의 TV 예능의 성비 불균형을 비판하면서 여성 출연자들이 중심이 됐던 ‘여걸 파이브’를 회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여성 친화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여성 출연자들은 모두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엔터테이너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재현되는 그녀들의 모습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거리감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애교, 조신함 등으로 지나치게 여성성을 내세우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여성성을 제거하고 희화화시키는 여성 캐릭터 앞에서 웃기 위해서는 이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여성들의 이분법적인 캐릭터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완전히 대상화하기도 불가능한, 반대로 동일시하기에는 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여성 없는’ 좀 모자라고 다정한 남성 엔터테이너들의 예능은 현재 여성에게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다. 주류 매체에서 재현된 여성의 모습에서, 특히 코미디에서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여성들에게는 성별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 없는 구도가 더 편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성 없는’ 여성 친화적 남성 엔터테이너들의 예능은 완전히 여성의 욕망만으로 구조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긴장으로 가득 찬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조건일 뿐이다. 언제든 여성에게는 ‘뒤통수’, 남성에게는 ‘여자들의 예민함’으로 요약되는 최근과 같은 ‘여성 혐오’ 논란들로 번질 수 있으며, 이러한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다. ‘여성 없는’ 남성 엔터테이너들이 주는 편안함을 넘어 여성들이 동일시해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여성 예능 엔터테이너를 상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