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등 매체 성차별·성고정관념 20년째 그대로
여성 종사자 늘었지만 의사결정직엔 여성 안보여
게임·웹툰 등 뉴미디어로 모니터링 확대해야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개그맨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가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한 여성 혐오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옹달샘’ 3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사과했지만, 이들의 사과는 “너무 철이 없고, 부족했다.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두루뭉술한 표현만 있을 뿐, 여성 혐오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들도 이들의 문제 발언을 그냥 눈감아 주는 모양세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옹달샘의 처참한 수준의 여성관과 노골적인 여성 혐오가 비단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 여성계는 1995년 베이징행동강령을 통해 미디어가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디어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용납하는 사회적 관습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베이징행동강령에서는 △미디어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내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표현과 의사 결정에 대한 여성의 참여와 접근을 중진시킨다 △미디어에서의 균형 잡히고 성별 전형화되지 않은 여성의 모습을 확대한다는 등 두 가지의 전략 목표를 채택했다.
지난 20년간 미디어가 비춘 여성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신문과 방송 등 주요 언론사에서 일하는 여성은 늘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14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방송산업 종사자 가운데 여성은 29.6%로, 아직 남성(70.4%)에 비해 적지만, 2011년 28.0%, 2012년 29.2%로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나 임원 등 의사결정직에는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상파방송사 전체 임원 131명 중 여성은 단 6명에 불과하다.
신문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언론사 19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1월 현재 여기자 비율은 25%로 2년 전에 비해 2배 늘었을 뿐이다. 반면, 보직간부를 맡고 있는 여기자는 총 45명, 여성 보직간부가 없는 언론사도 5곳이나 됐다. 4곳은 부장급 이상 여기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여성 인력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ICT부문 여성 인력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출판, 영상, 방송통신, 정보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인력의 비중이 2004년에 비해 5.1%포인트 줄어든 25.7%에 그쳤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돼 온 미디어 속 성차별과 성폭력, 성 역할 고정관념 등의 요소는 크게 나아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방송이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을 권하고 TV 카메라는 여성 아이돌 가수의 온몸을 훑는다. 신문과 방송은 ‘벤츠 여검사’ ‘김치녀’와 같은 여성 비하 단어를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고, 종합편성채널(종편)의 토크 프로그램은 고부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미녀’와 ‘몸매’를 내세워 외모를 성 상품화한다. 드라마에선 남성 주인공이 여성의 거부에도 손목을 낚아채며 일방적 스킨십을 시도하고, 부부 강간을 미화하기도 한다. 방송, 신문, 광고 할 것 없이 여성을 대상화, 성 상품화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정부는 베이징여성대회 이후 ‘여성발전기본법’에 미디어의 성차별적 내용이 개선되도록 지원하고 성평등 의식을 확산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대중매체의 성차별 개선을 위해 2006년부터 대중매체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간하고, 양성평등상을 시상하고 있지만 기존 주류 매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 등 뉴미디어에 대한 모니터링은 전무한 상태다.
여성정책의 중장기 계획인 4차 여성정책기본계획(2013~2017)에 ‘매체별 심의기구 및 모니터링에서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 조항이 포함되면서, 심의위원에 대한 성인지·성인권 감수성 교육, 성인지 관점의 모니터링 지표 개발이 정책 과제로 담겨 추후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편, 여성의 관점에서 뉴스를 제공하는 여러 대안적 여성 언론이 현재는 여성신문만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베이징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여성과 미디어’ 보고서에서 “1988년 ‘여성신문’ 창간 이후 1997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2000년 ‘미즈엔’, 2001년 ‘우먼타임스’가 창간됐지만, 여성전문 저널에 대한 낮은 사회적 관심으로 여성신문을 제외한 모든 매체가 폐간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성별에 따른 정보 격차는 새롭게 떠오른 문제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안전연구실장 등은 ‘매체 융합 환경에서 매체·정보 이용과 생산 현황 및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서 “여성 중 소득수준이 높거나 연령이 낮은 세대들은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다양한 이용 행태들을 보이는 반면, 소득수준이 낮거나 연령이 높은 여성들은 정보 이용과 활용, 생산에서 많은 제한을 겪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