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하고 영적으로 고갈되고 생명 파괴를 일삼는 남성 문화, 더 이상 안 돼!’
어머니 자궁으로 회귀하는 의식으로 신성한 영성 체험
지난 4월 16~19일 제주도 조이빌에서 호피·하바스파이·테와 계열 인디안인 모나 폴라카(Monaa Polacca)와 추장 오스틴(Austin)이 주재한, 일명 ‘스위트 로지 세리머니(sweat lodge ceremony)’라 불리는 북미 인디언 정화의례(purification ceremony)가 열렸다.
이 의례는 최근 부족 의례를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모인 순례객들이 참여하는 지구인들의 의례가 돼 가고 있다. 참여자 50여 명 중 미국에서 참여 경험이 있는 몇몇 한국 참가자들은 한국에서 이 의례에 함께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기뻐했다.
이런 글로벌한 ‘어머니 영성 의례’가 한국에서 열릴 수 있었던 데는 ‘부패하고 영적으로 고갈되고 생명 파괴를 일삼는 남성 문화, 더 이상 안 돼!’를 가슴속 깊이 부르짓으며 그 대안 중 하나를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모계 혹은 모성 문화에서 찾아온 여러 인연과 기운이 무르익어 모아졌기 때문이다. 의례 전에 열린 ‘2015대구세계물포럼’에 의례 주관자인 모나 폴라카가 이 포럼 참여차 한국에 왔고, 이 의례가 가지고 있는 모계 문화로서의 문명사적 의미를 익히 알고 있던 ‘생명모성연구소’ ‘삶의예술문화원’과 ‘가배울’이 상생의 협력을 했다. 영적 충전을 갈급해하던 카발라 스쿨 학생들을 위시해서 국내 참가자들이 이 의례를 알아보았다. 이 모든 인연이 합쳐져 의례를 마칠 수 있었으며, 이것은 하나의 필연으로 느껴진다.
의례는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버드나무 가지(우리는 대나무로 하였다)로 얼기설기 엮어 뼈대를 만든 것 위에 담요를 덮어 20~25명 정도가 빽빽하게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움막을 반나절 동안 짓는다. 움막 가운데 파진 구덩이에 집어넣을 태양을 상징하는 ‘할아버지 돌’을 벌겋게 되도록 장작불을 피워 달군다. 2부에서는 참가자들이 움막 안에 들어가 네 차례 40개가 들어오는 ‘할아버지 돌’에 물을 뿌려 나오는 증기와 열기 속에서 주례자가 먼저 기도하고 참가자들이 이어 모두 동시에 혹은 돌아가며(이 부분은 의례 주례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는 기도와 노래로 이뤄진다.
첫째로 정화의례는 고등 종교에 비해 원시종교의 영성을 하찮게 보았던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부수어버렸다. 고등 종교는 그 아편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경전을 중심으로 신학(기독교 신학), 철학(불교 철학)으로 인류의 영적 진보와 함께해 왔다. 원시종교는 이에 비해 경전이 아닌 구술 서사만 있다. 구술 서사 텍스트만으로 현대인에게 중요한 영적 기능을 하긴 어렵다는 것이 나의 편견이었다. 그러나 이번 의례는 원시종교에서 구술 서사 외에 노래와 기도, 춤이 동반되는 의례를 보아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둘째로 이러한 하나 되는 체험은 의례 공간인 움집의 구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리적으로는 캄캄하고 비좁고 비까지 와 앉은 땅은 질척거리고 ‘할아버지 돌’에 뿌린 물의 증기 효과로 사우나 안에서처럼 땀범벅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물리적인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신성한 영성이 체험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움집이 바로 음양 조화의 상생적인 역동적 기운 속에서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이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어머니 자궁으로 회귀한 것이다. 자궁 안 한 중앙 구덩이에 벌겋게 달구어진 ‘할아버지 돌’이 네 차례에 걸쳐 들어온다. 문헌 고증을 통해 한국 고대문화는 이데올로기화한 유교의 음양론과는 다른 음양상생적이고 음양상보적이라는 해석한 바 있는 나로서는 음양상생·상보의 고대 의례를 접한 생생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의례 공간은 평화와 상생의 어머니 공간 및 그 질서를 체험하는 공간이었다.
정화의례는 내년 5월에도 열린다. ‘오래된 미래’, 어머니 질서를 체험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 정화의례를 열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인연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