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의 탈북 여성들은 연령도 달랐고 거주지도 달랐지만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직업이나 본인의 직업과는 별도로 모두 장마당이나 무역, 밀수 혹은 방문판매의 형태로 장사를 하다가 왔다는, 즉 시장경제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며 60~70년대는 공산주의, 80년대는 사회주의, 90년대 이후 자본주의로 접어들어 지금은 반(半)자본주의사회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자본주의가 별거냐며 국가 배급이 아닌 주민들이 모든 생필품을 시장에서 사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면 그것이 자본주의 아니냐며 반문했다.
1990년대 초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로 시작된 경제난과 연이은 자연재해로 북한 당국은 더 이상 배급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됐고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장사라는 상행위를 시작했다. 현재 북한 전역에 400여 개가 넘는 장마당이 형성돼 있을 정도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있어서 시장은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됐다. 이런 북한 시장의 중심에 여성이 있다. 북한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 학생 시절에는 학교와 학교소년단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 그리고 성인이 돼서는 직장과 직업동맹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특히 북한 남성들은 공장이나 기업이 돌아가지 않아도 출근을 해야 하고 근무 지역을 이탈할 수가 없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교화소를 가든가 아니면 생활총화를 해야 하는 등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 여성들은 결혼 전에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는 자율성을 주기 때문에 교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에서 물러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이 집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장사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도 북한의 장마당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은 만 50세 이상의 기혼 여성에게만 주어져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연령 제한을 풀어 젊은 여성들도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북한 사회가 기혼 여성들에게만 시장 참여를 허용한 것은 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비사회주의적인 영역인 시장에 대한 여성의 참여를 남성의 참여보다 덜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도 적잖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여성들의 시장 참여는 처음엔 집에서 만든 음식이나 집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내다 팔던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북한 여성들은 차떼기 도매장사나 밀수, 무역 혹은 소은행(대리결제), 돈주 등의 형태로 시장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남편들의 생활비만으로는 가계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상승하면서 북한 여성의 경제활동은 부수입이 아닌 가족의 생계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즉 북한 여성들이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 사회에서 시장의 확대는 북한 여성들의 경제참여와 역할을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북한 여성들의 일상적인 생활에도 적잖은 변화들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