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나라들에서 우리나라에 결혼을 위해 입국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 관료의 단호한 어조가 한동안 귀에 어른거렸다. 재작년 말쯤의 일이었다. 그 나라 정부에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 어린 여성들을 한국 남성들과 결혼시키면서도 외교석상에서는 인권침해 문제를 거론하는 이중적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혼 기준을 엄격히 하고, 결혼 여성을 위한 현지 사전교육도 전면 중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결혼이 경제라는 잣대로만 접근되는 것이나 여성 인권이 외교 문제로, 다시 한 관료의 감정적인 문제로 처리되는 것에 마음이 쓰라렸다.
이 과격한 방침은 올해 수정돼 여러 기준이 합리화되고 현지에서 여성을 돕는 프로그램도 재개됐으나 정부 정책이 세심한 고려 없이 요동치는 것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이들에게 기울여온 시민사회의 노력을 한갓 쓸데없는 일로 만든 것에도 허탈감을 피할 수 없었다.
또 하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국회의원 이자스민. 믿고 따라왔던 한국인 남편이 죽자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필리핀 여성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필자가 하는 인권 관련 수업의 단골 강사였으며, 현지 사전교육을 진행하는 시민단체인 유엔인권정책센터 자원 활동가이기도 했다. 국제결혼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를 생생하게 전해주며 한국어, 영어, 필리핀어를 자유자재로 통역하는 재주꾼이다. 그런데 요즘 이자스민 의원이 이주민을 위해 펼치고 있는 국회 활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배고팠던 시절에 우리나라 여성들도 우편사진 한 장에 낯모르는 외국 남성에게 시집 갔던 적이 있다. 한국에 주둔했던 군인을 따라 미국으로 결혼해 간 여성들도 있었다. 타향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맨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결혼할 여성을 찾아 데려오기 시작했다. 노인과 장남만 남고 모두 떠나버린 농촌에서 시작된 국제결혼은 도시로까지 확산됐다.
‘러브 인 아시아’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우리나라 평균 이혼율을 훨씬 웃도는 높은 이혼에다 가정폭력이 난무한다. 이런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학업 부진이나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제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마이너리티 집단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여러 대책을 모색해온 것도 사실이다. 인신매매 하듯 여성을 연결하는 중개업자들을 단속하고, 결혼을 원하는 남성들에 대해 결혼 자격 자산의 기준을 높이고, 결혼 대상 여성의 문화·역사와 결혼생활 등에 관해 사전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현지에서 결혼 희망자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 내에서도 전국 200여 곳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설립해 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어, 취업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다각화하고 있다. 현지와 국내에서 수많은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족이 우리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자리잡는 것은 먼 이상 같다. 우리의 차별적 태도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을 사회문제화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바로 이 차별과 편견이다.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무지와 비하는 그 차별의 출발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결혼이 결혼중개업 시장의 상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혼이 진정성 있고 신중하게 이뤄지도록 세심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을 모든 국민에게 폭넓게 시행해야 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의 좁은 관념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세계를 리드해 나갈 국가로서 큰 발걸음을 내딛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