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급인 대통령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장, 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장을 지낸 사회복지 전문가다. 조형 전 이사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2월 취임한 그는 “박영숙 초대 이사장이 열정으로 닦아놓은 기초 위에, 조형 이사장이 헌신으로 지어 올린 재단을 이어받아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여성학회장 시절 세계여성학대회 치러
-한국여성학회장으로 있을 당시 세계여성학대회를 한국에서 치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화여대와 연세대, 서강대가 협력해 ‘여성 유엔총회’로 불리는 세계여성학대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신문에도 대서특필되고 모금도 아주 많이 했다. 명예대회장을 권양숙 영부인이 맡았는데 기업들도 큰 호응을 보내왔다. ‘아프리카의 딸’로 불리던 거트루드 몽겔라 범아프리카의회 의장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학자, 정치인, 여성운동가, 정책결정자 등이 한국에 모여들었다. 조직위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큰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연세대 교수로 있을 당시 가양4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맡았는데.
“2000년대 초반에 3년을 맡았다. 무척 즐겁게 일했다. 저소득층 임대아파트 지역이었는데, 지금 유행하는 마을 만들기를 그때 참 열심히 했다. 주민들이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 중 한 조직이 엄지회(엄마지킴이회)였다. 복지관이 어린이집을 운영했는데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잘 돌봐주고 있다가 엄지회 엄마들에게 연결해줬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상조회도 만들고….
처음에는 이혜경이 관장으로 온다니까 ‘아이고 웬 여자가 오냐, 재수 없다(웃음)’ 그런 분위기였다. 그 전에는 남자 교수들이 주로 했으니까. 조금 지나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금까지도 ‘이혜경 관장 때가 가장 좋았어’ 그러신다더라.(웃음)”
-요즘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이후 보편적 복지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무상과 보편주의는 사실 별개의 문제다. 초기에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보편주의를 무상으로 접근해 모든 사람들에게 기초 생활을 보장한다는 식으로 해석해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 노후 보장을 전부 다 무상으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무상은 조세로 한다는 얘기인데 보편주의는 대상의 문제다. 복지를 정치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
-서울복지재단 이사장도 지냈다. 복지 철학을 들려달라.
“시장경제체제가 민주주의와 합쳐졌을 때 항상 비는 부분이 생긴다. 국민 개개인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복지국가가 최소한으로 할 일이다. 국가가 복지국가를 제대로 끌고 가려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사회정의 구현이 곧 국가의 존재 이유다. 마지막까지 패자가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복지의식도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시민교육이 중요하고 특히 여성들이 가진 여성성이 메인 스트림(주류)이 돼야 한다. 국가만 바라보지 말고 여성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캠퍼스 커플이었던 동갑내기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맏딸 윤선(40)씨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아들 진욱(34)씨는 5월 중 카네기멜론대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여름부터 프랑스 H.E.C.대 경영대 교수로 강단에 선다. 누가 봐도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런데 그가 할머니라니 잘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 정작 그는 “귀여운 손주를 셋이나 둔 영락없는 할머니”라며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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