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 바보’여도 우리 딸들은 서른 살만 되면 유리천장 막혀 좌절
대통령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장 지낸 복지 전문가 “여성성, 메인스트림 돼야”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박영숙홀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이사장은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여성단체는 민주주의 실험장이자 교육장이다. 여성단체를 키우는 것이 곧 민주주의를 키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박영숙홀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이사장은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여성단체는 민주주의 실험장이자 교육장이다. 여성단체를 키우는 것이 곧 민주주의를 키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재단 슬로건이 너무 올드(old)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요새 아들만 있으면 불행하다는 부모가 크게 늘었고 ‘딸 바보 아빠’도 얼마나 많은데 무슨 옛날 슬로건이냐는 얘기다.(웃음) 심지어 ‘딸들에게 희망을 더 줄 필요가 없다’ ‘이제는 아들의 기를 펴줘야 돼’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농담으로 돌리고 싶다. 딸들이 겪는 유리천장이 아직도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재단 이혜경(67) 이사장은 요즘 ‘딸 바보’ 아빠들을 만날 때마다 100인 기부릴레이를 알리느라 바쁘다. 올해 열세 번째를 맞은 100인 기부릴레이는 우리의 딸들을 응원하는 대표적인 나눔 축제다. 수익금은 전액 성평등 사업을 위해 쓰인다.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여성재단에서 만난 이혜경 이사장에게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엄청 바빴어요”라며 가볍게 웃었다. “생각보다 재단 프로젝트가 다양하더라고요. 기업과의 파트너십도 기대 이상으로 돈독해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재단 직원들을 만난 거예요. 일당백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더군요. 직원들에겐 진짜 고마워요.”

12년간 4만 명 참여, 15억원 모금

이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급인 대통령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장, 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장을 지낸 사회복지 전문가다. 32년간 대학 강단에서 제자들을 길러온 그는 조형 전 이사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2월 3대 이사장직에 취임했다. 당시 “박영숙 초대 이사장이 열정으로 닦아놓은 기초 위에, 조형 이사장이 헌신으로 지어 올린 재단을 이어받아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던 취임사를 인상 깊게 들었다는 이들이 많았다.

-올해 ‘100인 기부릴레이’ 출발 행사가 시작됐다. 지난 12년간의 참여 인원이 4만 명에 이르는데.

“지난해에는 126명의 이끔이가 4707명의 주자를 모았다. 모금액은 1억9044만원이었다. 지난 12년간 4만 명이 참여해 15억원을 모금했다. 올해도 열기가 뜨겁다. 8일 오전 현재 139명이 이끔이로 나섰다. ‘나눔 릴레이’라는 아이디어가 정말 훌륭하지 않나?(웃음)”

-여성 NGO들은 “재단이 비빌 언덕 같은 곳”이라고 하더라. 3년의 임기 동안 재단을 어떻게 이끌고 싶나.

“여성단체는 민주주의 실험장이자 교육장이다. 여성단체를 키우는 것이 곧 민주주의를 키우는 일이다. 딸들이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사회 주류로 참여하려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00인 기부릴레이는 개인 기부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모금 방식이다. 4만 명을 40만 명, 400만 명으로 어떻게 늘릴지 목표를 세워 모금의 저변을 넓히겠다.”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한국의 성평등 지수가 여전히 낮다”며 “아빠들이 ‘딸 바보’여도 딸들은 서른 살만 되면 다 좌절하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한국의 성평등 지수가 여전히 낮다”며 “아빠들이 ‘딸 바보’여도 딸들은 서른 살만 되면 다 좌절하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성평등은 경제성장의 필수 요소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재단 슬로건이 가슴에 와 닿는다는 여성들이 많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교육 수준은 엄청 높다. 대학 진학률이 8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등이다. 그런데 여성고용률은 50% 수준이다. 유럽은 평균 70%, 스칸다나비아 국가는 78%다. 여성에 대한 투자는 다 한다. 교육만 놓고 보면 딸들에게 희망을 충분히 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쪽을 들여다보면 너무 희망이 없다.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이 0.2%에 불과하다. 진짜 상상을 초월한다. 외국에선 대한민국 여성들이 똑똑한데 진짜 그 정도냐고 반문한다. 아빠들이 ‘딸 바보’여도 딸들이 서른 살만 되면 다 좌절하게 되어 있다.”

이 이사장은 “성평등은 경제성장의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은행 리포트를 예로 들며 국가의 성장과 경쟁력이 성평등에 의해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건강·교육·훈련에 똑같이 투자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더 많이 줄 때 그 혜택은 여성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경제 전반에 퍼진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재단은 1999년 딸들이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사회 공익재단이자 여성을 위한 유일한 민간 재단이다. 이 이사장은 “여성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곳”이라며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프로젝트로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들이 많은 변화를 이뤄냈지만 여성권한 척도로 보는 여성의 지위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60년대의 발전주의와 유동적 탈근대가 공존하는 슈퍼 위험사회다. 성평등을 위한 연대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석학들은 우리 미래에 다가올 위기를 해결하려면 윤리와 도덕, 공감과 정의의 성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 이사장은 경기여중고를 거쳐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해 하와이대 사회사업학 석사, 버클리대 사회복지학 박사를 마쳤다. 학교 선배인 조형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중1 때 고2 대대장이었던 조형은 여자 후배들에게 전설 같은 존재였다. 이화여대 교수 시절 연구실 창가에 서면 조형 교수의 방이 보였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선배를 드디어 만난 것이다.

그는 “사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남자는 실력으로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사회복지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해졌다. 그는 “사회복지학이 엄청 훌륭한 학문이라고 생각해서 유학을 갔는데 미국에서 사회사업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더라. 하와이대에서 공부할 당시 고민이 컸다. 그런데 그 시기가 여성주의와 여성 리더십에 눈을 뜨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고 했다.

당시 한국 유학생 가운데 이화여대 졸업생이 여럿이었다. 이들의 책꽂이에는 두툼한 페미니즘 도서들이 꽂혀 있었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페미니즘 세례를 자연스레 받았다. 고 강원용 목사와의 만남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충격이다. 경동교회에서 시무하던 그가 잠시 하와이에 들렀다가 유학생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능력 있는 여자들은 결혼할 필요 없어, 결혼 안 하는 게 낫다!” 페미니스트 선각자와의 만남은 사고를 전환하는 불씨가 됐다. 1982년 이화여대에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친 일도 여성주의 시각을 훈련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복지와 여성학을 연결시키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다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복지사회 구현을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로 내세웠다. 사회복지학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때부터 시작된 복지국가 비판론의 선두에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있었다.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성별 분업을 고착화한다는 지적이었다.”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급인 대통령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장, 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장을 지낸 사회복지 전문가다. 조형 전 이사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2월 취임한 그는 “박영숙 초대 이사장이 열정으로 닦아놓은 기초 위에, 조형 이사장이 헌신으로 지어 올린 재단을 이어받아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급인 대통령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장, 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장을 지낸 사회복지 전문가다. 조형 전 이사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2월 취임한 그는 “박영숙 초대 이사장이 열정으로 닦아놓은 기초 위에, 조형 이사장이 헌신으로 지어 올린 재단을 이어받아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여성학회장 시절 세계여성학대회 치러

-한국여성학회장으로 있을 당시 세계여성학대회를 한국에서 치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화여대와 연세대, 서강대가 협력해 ‘여성 유엔총회’로 불리는 세계여성학대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신문에도 대서특필되고 모금도 아주 많이 했다. 명예대회장을 권양숙 영부인이 맡았는데 기업들도 큰 호응을 보내왔다. ‘아프리카의 딸’로 불리던 거트루드 몽겔라 범아프리카의회 의장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학자, 정치인, 여성운동가, 정책결정자 등이 한국에 모여들었다. 조직위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큰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연세대 교수로 있을 당시 가양4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맡았는데.

“2000년대 초반에 3년을 맡았다. 무척 즐겁게 일했다. 저소득층 임대아파트 지역이었는데, 지금 유행하는 마을 만들기를 그때 참 열심히 했다. 주민들이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 중 한 조직이 엄지회(엄마지킴이회)였다. 복지관이 어린이집을 운영했는데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잘 돌봐주고 있다가 엄지회 엄마들에게 연결해줬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상조회도 만들고….

처음에는 이혜경이 관장으로 온다니까 ‘아이고 웬 여자가 오냐, 재수 없다(웃음)’ 그런 분위기였다. 그 전에는 남자 교수들이 주로 했으니까. 조금 지나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금까지도 ‘이혜경 관장 때가 가장 좋았어’ 그러신다더라.(웃음)”

-요즘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이후 보편적 복지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무상과 보편주의는 사실 별개의 문제다. 초기에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보편주의를 무상으로 접근해 모든 사람들에게 기초 생활을 보장한다는 식으로 해석해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 노후 보장을 전부 다 무상으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무상은 조세로 한다는 얘기인데 보편주의는 대상의 문제다. 복지를 정치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

-서울복지재단 이사장도 지냈다. 복지 철학을 들려달라.

“시장경제체제가 민주주의와 합쳐졌을 때 항상 비는 부분이 생긴다. 국민 개개인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복지국가가 최소한으로 할 일이다. 국가가 복지국가를 제대로 끌고 가려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사회정의 구현이 곧 국가의 존재 이유다. 마지막까지 패자가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복지의식도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시민교육이 중요하고 특히 여성들이 가진 여성성이 메인 스트림(주류)이 돼야 한다. 국가만 바라보지 말고 여성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캠퍼스 커플이었던 동갑내기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맏딸 윤선(40)씨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아들 진욱(34)씨는 5월 중 카네기멜론대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여름부터 프랑스 H.E.C.대 경영대 교수로 강단에 선다. 누가 봐도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런데 그가 할머니라니 잘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 정작 그는 “귀여운 손주를 셋이나 둔 영락없는 할머니”라며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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