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다양한 조직에서 상사로 일해 왔다. 돌이켜보니 어느 시대든 남녀를 떠나 배려하고, 인정하고, 책임져주는 상사를 좋아하는 것은 모든 팀원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직원들에게 여성 상사와 일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상사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별 의미가 없고 어떤 상사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상사의 자격지심이나 프리미엄은 이제 걱정도, 기대도 말아야한다.

사실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할 때 더 많은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일해 왔다. 게다가 홍보 분야는 일사불란한 팀워크보다는 창의적인 개인기가 더 중요해서 도전정신과 경험, 남성과 여성적 감수성이 결합되면 매우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서울YMCA에 개관한 공익 문화 공간인 한수원 에너지팜은 좋은 사례다. 젊은이들의 오랜 만남의 장소인 서울YMCA에 공익형 에너지 체험 카페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나를 비롯한 직원들의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그리고 도전정신이 융합됐기 때문이다. 창의와 협업이 강조되는 시대에 앞으로도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느꼈다.

한때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가장 중요한 상사의 조건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 만큼 위험한 생각도 없다는 생각이 커졌다.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내려 하기보다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결론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성과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배려하고, 인정하고 책임져주는 것 외에 기다려주고 들어주는 상사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남성 직원들에게 어떤 상사였으면 좋으냐고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은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상사라고 말한다. 자신들도 가끔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성 직원들에게는 일이 힘들고 잘 안 풀릴 때 내 방에서 실컷 울라고 자리를 비켜주는 적도 많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후련해진 마음이 돼야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처음 여성 부서장으로 승진시켜준 나의 첫 여성 상사에게서 업무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함께 일하다 보니 상사는 부하 직원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게 된다. 강점은 칭찬해주고, 약점은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훌륭한 상사이자 멘토일 것이다. 존경하는 상사를 닮고 싶고 성과를 내려하다 보면, 약점은 스스로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보다 더 오래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남성 선배를 만나 그 비결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건강을 잘 유지하고, 개방적으로 사고하며, 계속해서 배우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자신에게 부족한 여성 리더십을 열심히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들은 이렇게 중간에서 만나며, 여성 상사라는 단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이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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