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만든 잼, 비누, 가방 판매
전업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도
벼룩시장(플리마켓)의 계절이 왔다. 주로 야외에서 펼치는 시장의 특성상 겨울은 휴식기다. 밝은 햇빛과 따뜻한 공기가 돌기 시작하는 요즘 판매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벼룩시장 하면 안 쓰는 옷과 소형 가전제품 등을 가지고 나와 저렴한 가격에 팔거나 물물교환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조금씩 진화한 벼룩시장에는 좀 더 창의적인 아이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향초, 비누, 잼, 애견 간식, 가죽 소품, 패브릭, 인형, 손글씨, 액세서리, 그림, 사진, 그릇, 에코백, 손뜨개 등 직접 만든 참신한 제품들이다.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규모는 작지만 알짜다.
실생활에 유용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다 보니 참여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나도 한번 해볼까?”로 시작한 벼룩시장은 창업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홍대 예술시장 플리마켓, 합정역 일러스트마켓, 광화문 희망나눔장터, 대학로 마르쉐, 마포구 늘장, 이태원 계단장과 앤티크&빈티지 플리마켓, 방배동 토요벼룩시장,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 등 서울 도심에서 만나는 벼룩시장은 풍성하다.
가족과 먹던 잼, 고급 수제품으로 재탄생
유기농 수제 잼을 판매하는 박수진(가명·45)씨는 주부다. 평소 직접 잼을 만들어 먹었는데 친구들과 주변 이웃들이 잼을 팔아보라며 권하곤 했다. 우연한 기회에 벼룩시장을 접한 박씨는 1년 전 처음으로 잼을 판매했다.
“결혼 전에는 방송국 프로듀서로 활동했어요. 아이를 낳고 한 10년을 집에 있다 보니 내가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일할 땐 나름대로 내 삶이 있었는데 말이죠. 플리마켓을 하면서 손님이 또 나를 찾아 줄 때 희열을 느껴요. 친구를 데리고 와서 여기가 맛있다며 소개하는 분들도 있죠. 전화나 이메일로 주문이 들어오면 택배로 보내거나 다음 마켓에서 다시 만나기도 해요. 단골이 생긴 거죠.”
벼룩시장으로 박씨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말에는 잼 전문 매장도 열 예정이다. 전업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기까지 벼룩시장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벼룩시장은 시장 주최 측에 사전 등록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온라인 벼룩시장 사이트에는 판매자 모집 공고로 가득하다. 가입 회원 수는 1만9000명이 넘는다. 자릿세 명목으로 3만~4만원의 참가비 또는 회비를 내면 자신만의 공간을 얻을 수 있다.
단, 판매 수익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해서 사업자 등록은 필수다. 먹거리를 판매할 때는 식품위생법상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허가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제조·가공한 식품을 판매해서도 안 된다.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 무신고 영업을 해도 행정처분을 받는다.
유기농이라는 단어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얼마 전 가수 이효리도 자신이 재배한 콩을 시장에 팔면서 유기농 표기를 했다가 고소당하기도 했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려면 관계 기관의 인증이 있어야 한다.
제품에 대한 정보와 책임감은 필수 조건
간혹 규칙을 어기는 판매자들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박씨도 다른 판매자가 판매한 잼에서 두 번이나 곰팡이가 나오면서 덩달아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제품에 책임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제 비누와 향초를 판매하는 황정은(가명·37)씨도 무책임한 판매자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물건을 만들어 팔 거면 최소한 제품 재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았으면 해요. 전문 지식 없이 그냥 판매하는 사람들을 못 하게 할 순 없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판매자들에게 피해가 돼요. 돈 생각만 하고 나오는 분들이 많아요.”
황씨는 판매대 앞에 자격증과 인증서 등을 전시해 놓았다. 직접 제작한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신뢰를 주는 방법이다. 아로마 세러피 전문가인 그는 자신만의 공방을 내고 세러피 강좌를 여는 것이 목표다. 그 목표를 위해 매주 벼룩시장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나오지만 돈만 좇진 않는다. “장사치처럼 돈을 목적으로 했다면 선호도가 높은 진한 향을 사용했겠지만 저는 은은한 천연 향만 고집해요. 진짜 제 물건을 알아주는 분들만 상대하고 싶어요. 저의 노하우와 자부심, 노력 전부가 들어가니까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죠.”
박수진씨와 황정은씨처럼 벼룩시장 판매자 대부분은 자기만의 매장을 여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매장을 열어도 벼룩시장은 계속할 거라고 말했다. 손님과 직접 소통하며 제품 반응도 얻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구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