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 두 번, 지역구 세 번 당선 5선… 여야 통틀어 최다선 국회의원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 위원장 맡아 전·월세 상한제 도입 추진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4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정의로운 사회,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런 변화를 이끄는 게 정치를 하는 이유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free prescription cards sporturfintl.com coupon for cialis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4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정의로운 사회,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런 변화를 이끄는 게 정치를 하는 이유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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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미경(65‧5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요즘 현장에 갈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폐업해서 문을 닫은 가게나 전‧월세값 폭등으로 가계빚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볼 때면 죄책감에 빠진다. 이럴 때면 딸이 “엄마, 국회의원 왜 해”라고 묻던 질문을 떠올린다.

“딸에게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정의로운 사회,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런 변화를 이끄는 게 정치를 하는 이유이자 보람이니까요.”

첫 6선 고지 오를까 ‘주목’

3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주한 그는 “정치는 밥 아닐까”라며 의외의 정치철학을 들려줬다. 임옥상 화백이 선물한 숟가락이 붙어 있는 조형물 이야기도 했다. 주변에 밥 굶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고, 오늘 하루 제대로 밥값을 했는지 책상머리에 두고 거울처럼 쓴다는 것이다. 중진이지만 현장을 놓치지 않는 것도 민생이 최우선인 정치를 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출신의 여성운동가로 국회에 입성한 후 여성 최다선 국회의원이 된 그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996년 15대 국회에 들어간 이래 내리 5선을 기록한 그가 내년 4월 20대 총선에서 결실을 낼지 관심거리다. 비례대표를 두 번 하고 지역구(은평갑)에서 3선을 한 그의 이력은 재선, 다선을 배출해야 하는 여성정치계에선 벤치마킹 대상이다. 여성 정치인 1호로 민주당 총재를 지낸 고 박순천 여사가 5선 국회의원이었고 한동안 5선 명맥이 끊겼다가 이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이 19대 국회에서 5선에 성공했다. 그가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면 의정 사상 최초의 여성 6선 의원이 나온다.

-20년 의정 활동을 돌아보자면.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간 것 같다.(웃음) 국회 첫 등원 당시 바지 정장을 입었다. 이전까지 여성 의원들은 투피스 치마 정장을 입었다. 당시 엄청나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공식적인 제지는 없었다. 그렇게 여성 의원들의 바지 정장이 국회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많은 일을 겪었는데 시련이 언제냐고 물을 때마다 난처하다. 힘든 일도 지나면 다 잊는 성격이다.(웃음) 굳이 떠올리자면 1996년 정계 입문 후 동티모르 파병안 표결 때 당론에 맞서다 출당당하고, 당 개혁을 요구하다 머리채를 잡히는 수모를 겪었던 일이다.

내가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호주제 폐지, 여성 정치참여 할당제가 주요 이슈였는데 이미 다 해결됐다. 내가 위원장을 지낸 국회 아동·여성 대상 성폭력대책특위에서 2013년 친고죄 폐지라는 성과를 거뒀다. 여성 의원 수도 크게 늘었다. 1996년 당시 3.3%였으나 19년 지난 지금은 16.1%다.”

-임계점인 30%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30%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최소 기준이다. 남자 의원들은 ‘진짜 빠른 속도로 변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절반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증가 속도가 느렸던 걸까? 우선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다. 특히 지역구 공천의 장벽이 높다. 이번에도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대표 100석으로 늘리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해서 다행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당헌, 당규의 공천 30% 여성할당제가 지역구 여성 진출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대 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 그런데 공천 30% 여성할당제가 있으면 아슬아슬한 경쟁 구도에서 여성 후보를 내라는 주장이 먹힐 수 있다.”

-예전엔 돈 걱정과 가족의 반대로 여성들이 정치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요즘은 가족 반대로 정치를 못 하는 경우가 훨씬 줄었다. 돈 없어 못 한다는 소리도 못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돈 안 쓰는 정치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공영제 시행으로 10% 이상 표를 받으면 후보가 쓴 돈의 80% 이상을 돌려받는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훨씬 유리해졌다.”

이 의원은 “여성 정치인들의 아킬레스건은 네트워크”라며 “우리 보좌진도 ‘하다 못해 남녀공학 고교, 남녀공학 대학을 나와야지, 어떻게 여자중고교에 여자대학, 대학원까지 여대를 나왔느냐’고 한다”며 웃었다. 그가 여성 정치인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이 걸어오는 길”이라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산다고 했다. ‘눈길 함부로 걷지 마라 / 네 발자국이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구처럼 자신이 허투루 길을 걸으면 후배들의 길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어 늘 조심한다는 것이다.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여성학에 눈을 뜬 이후 ‘세상을 구하려거든 여성을 구하라’ ‘딸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고 말했다.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cialis coupon free prescriptions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여성학에 눈을 뜬 이후 ‘세상을 구하려거든 여성을 구하라’ ‘딸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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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상을 구하려거든 여성을 구하라’

여성학에 눈을 뜬 이후 그는 ‘세상을 구하려거든 여성을 구하라’ ‘딸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여성 정치인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크다. “사실 여성 의원들이 모두 다 일을 잘해요.(웃음)” 그러면서 장향숙 전 의원을 비례대표 1번으로 올렸던 일을 들려줬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장 전 의원은 저학력과 장애인이란 이중고를 극복하고 꿋꿋한 의지로 의정 활동을 했다.

-비례 의원들이 지역에서 당선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으니 연고가 있다는 확신으로 지역구를 정했다가 경선에서 탈락하거나 낙선한 여성이 몇 명 있다. 내가 지역구에 안착하는 과정도 어려웠다. 처음에 공천을 받아서 가니 왜 여자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느냐며 당원들이 여의도 중앙당사에 와서 시위를 하는 바람에 공중파 9시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보름 동안 지역구 사무실에 못 들어가고 한 사람씩 만나서 설득했다. 오랜 기간 활동한 당원들은 보수적이다. 아직도 그런 면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성 후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다 돼 있다.”

그는 성평등 정치가 역사의 방향이라고 했다. 남녀 정치인 수가 50 대 50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가 진보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빨리 온다는 얘기다.

-여성 정치 인력풀이 더 커져야 한다.

“정치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을 평소 많이 발굴해야 한다. 이들이 경력과 활동에서 남성들을 압도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여성 정치인 풀도 이제 지역으로 넓혀야 한다. 그동안은 전문직 여성들이 많이 나왔다면 지방자치 20년을 맞은 지금은 지방 의원들이 중요한 인력풀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을 발굴해 인력풀을 넓힐 필요가 있다.”

-여야 여성 의원들의 연대도 절실하다.

“30% 공천을 위한 여야 여성들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처음에 여성 비례대표 할당제를 만들 때 여야 여성들의 교류가 활발했다. 18대 때 다시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잘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야 정쟁 때 여성들이 맨 앞에 나서더라. 그러고도 연대에는 소홀해서 실망했다. 연대가 없어 여성 공천이 줄어드는 면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보다 단체장 공천은 부족한데.

“국회의원 공천과 달리 단체장 공천에선 오히려 뒤떨어져서 아쉽다. 새누리가 강남3구에 여성 단체장 후보를 낸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 당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성평등 정치가 역사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남녀 정치인 수가 50 대 50이 돼야 역사가 진보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빨리 온다는 얘기다.free prescription cards cialis coupons and discounts coupon for cialis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성평등 정치가 역사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남녀 정치인 수가 50 대 50이 돼야 역사가 진보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빨리 온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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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는 전통적인 남성 영역으로 여겨졌던 직책에 여성이 잘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3선 때 첫 여성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을 지낸 그는 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자력으로 당선돼 화제를 낳았다. 또 4선 때 4년 내내 중앙당 사무총장을 맡아 인사나 재정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에게는 재미있는 닉네임이 있다. 4대강 4대강불법비리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후 이런 별칭을 얻었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4대강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편해했어요.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언성을 높이고 ‘아, 이제 그만하시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국회 관행상 선배 의원이 질문하는데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죠. 끝난 후 미안했는지 ‘4대강 이야기 좀 그만하세요, 강물의원님’ 그러더군요. 하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6년간 활동한 그는 “국토의 절반을 흐르는 4대강에 대형 댐을 세워 강을 오염시켰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 담합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용도 22조원이나 들었고 한국수자원공사가 정부로부터 빌린 8조원에 대한 이자도 계속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토교통위를 상임위로 정한 이유를 묻자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국토부더라”며 “서민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펴고, 초선 때부터 염려해온 4대강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국토교통위에 오게 됐다. 초선 때와 같은 왕성한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나더러 지난 20년간 역사적이고 중요한 일을 해왔는데 왜 그렇게 이름이 덜 알려졌느냐며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투쟁보다 실용 노선을 걷다 보니 매스컴의 관심을 덜 끈 것 같다고 했다. “당장 목소리가 크면 일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요. 하지만 약간씩 타협해가며 실용성을 추구하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수 있지요. 어떤 때는 내가 쇼맨십 없이 일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그래도 알아준 사람이 있었으니 5선을 했겠죠?(웃음).”

이미경 의원은

여성 최다선 국회의원.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마쳤다. 선후배들과 의기투합해 이대 최초의 학생운동 동아리 ‘새얼’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를 “연애보다 운동이 더 재밌었다”고 말했다. 졸업 후 여성계로 옮겨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에서 여성·평화 담당 연구원으로 있다 친구들과 함께 여성평우회를 만들었고 그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창립해 여성운동을 해나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총무 시절 ‘위안부’ 할머니들을 설득해 최초로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으며, 그가 교회 꽃꽂이에서 착안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시위로 기록되고 있다.

법무부 산하가 아닌 독립기관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입법화한 것은 인권정책사에 큰 이정표가 됐다. 여성할당제를 선거법에 명시하게 된 것도 성과다. 2006년 당의 부동산특별위원장 시절 분양가상한제 도입 등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한 정책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현재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 위원장을 맡아 서민 주거대책을 제도화하는 활동을 하게 된 뿌리이기도 하다.

이옥경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사장이 친언니다. 이씨의 남편인 고 조영래 변호사에 대해 그는 “형부이자 동지였다”고 회고했다. 이 의원은 이창식 전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과의 사이에 아람, 나래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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