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행동강령 이후 20년, 양성평등 어디까지 왔나

베이징 선언 이후 20년, 양성평등 어디까지 왔나

1995년 베이징 행동강령은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을 위해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할 12개 분야의 과제를 제시했고 이는 각국 정부가 양성평등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기초가 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양성평등은 어디까지 달성됐을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유엔여성(UNWomen)은 제59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개막에 앞서 베이징 행동강령에서 제시한 양성평등 과제의 이행 실적을 점검하는 ‘베이징 행동강령 보고서’를 발표했다. 12개 분야별 주요 발전 상황을 그래픽과 함께 소개한다.

빈곤은 여성에게 있어 성차별과 경제적 차별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안겨준다. 특히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는 아직도 12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 1.25달러(약 1400원) 이하의 적은 생활비로 살아가고 있다. 1990년과 비교하면 7억 명이나 감소한 숫자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은 여성에 대한 교육훈련과 소액 대출 등을 제공해 이들이 일자리나 자신의 사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교육은 잘못된 성적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한 도구이며 미래의 변화를 이끌 리더를 길러내는 장이기에 중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초등교육 수혜율의 남녀 차이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중등교육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등교육에서 여성의 교육 수혜율은 남성의 64%에 불과하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탈문맹률도 1990년 76%에서 84%로 높아졌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전 세계 문맹자의 60%가 여성인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인권의 주요 지표 중 하나로 꼽히는 산모 사망률은 1990년에 비해 45%나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800명의 여성이 출산과 관련해 사망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충분한 영양공급과 적절한 의료조치로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에이즈와 에볼라 바이러스 또한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협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여성폭력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여성폭력추방기간을 지정할 정도로 유엔의 최우선 정책이기도 하다.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여성폭력방지협약을 채택한 후 이를 토대로 삼아 전 세계 3분의 2에 달하는 국가들이 가정폭력 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3명 중 1명이 육체적·성적 폭력을 경험하고 있으며 가해자의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배우자라는 통계 자료는 여성 폭력이 여전히 심각한 문제임을 일깨워준다.

200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분쟁지역 평화협상 과정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안보리 결의안 1325호를 채택했다. 그러나 1992년부터 2011년까지 평화협상 과정에 참여한 여성의 비율은 9%에 불과했다. 전쟁은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여성들을 위험에 노출시킨다. 전쟁터에서는 성폭력이 만연하고 때로는 여성들의 몸을 무기로 삼기도 하며 전쟁이 끝난 후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할 사람들도 여성이다. 전쟁의 주역이 남성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인식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수를 받는 일자리를 갖고 있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로 1990년에 비해 10%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일자리에서 여성이 받는 임금은 남성의 10~30% 적다. 여성들은 낮은 보수와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에 시달리고 있으며 고위직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20년간 의회 내 여성 비율은 두 배로 증가했지만 그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 선정 500대 기업에 포함된 여성 CEO는 25명으로 1998년 단 한 명이었던 것에 비해 엄청난 증가를 보였지만 전체 기업 CEO 중 여성의 비율은 겨우 5%다. 이처럼 여성들은 정치, 기업, 시민사회, 학교 등 각 분야에서 소수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률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수다. 현재 전 세계 195개국 중 143개 나라에서 헌법에서 남녀평등을 보장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은 다양한 분야에서 직·간접으로 존재한다.

유엔은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과 같은 국제적인 성차별 금지조약을 제정해 각국 정부가 여성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60개가 넘는 국가에서 여성들은 국적이나 시민권의 취득, 변경, 보유에 있어 제한을 받는다. 특히 비국적자인 남성과 결혼할 경우 상대 남성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시민권 취득에 차별이 있다는 것은 선거권이나 재산권, 취업, 복지혜택, 교육, 보건 등에서 차별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년간 출판, 방송 등 미디어에서 여성을 주제로 한 다루는 뉴스 기사는 겨우 24%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중 46%는 성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것은 6%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미디어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용납하는 사회적 관습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디어가 여성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며 미디어가 그리는 강한 여성 리더는 대중들에게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년간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게 된 사람이 20억 명이나 늘어났다. 하지만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국가들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매일 1600만 시간을 물을 구하는 데 쓰고 있다. 물을 구하는 주역이고 낚시, 농사를 하는 여성들은 기후변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지만 환경정책 수립에 있어서 그들의 목소리는 종종 무시되고 있다.

여성할례가 관습으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의 29개 국가에서 1억3300만 명의 여자아이들이 할례를 경험했다. 할례가 종교적 관습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있지만 할례는 어린아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신체적 트라우마를 안겨주며 미래의 임신이나 성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할례 과정에서 과다 출혈이나 감염으로 사망하는 아이들도 많다. 조혼 또한 여자아이에 대한 또 다른 아동학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