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후쿠시마 출신 탈핵 운동가 나가시마 카에데

4년이 흘렀다.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엄청난 쓰나미로 이어져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로 현재까지 1만 8,483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피해 지역의 재생과 재건도 요원하다. 22만 9,000여 명이 피난민 신세를 면치 못했고, 8만여 명은 임시주택에서 살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재해 관련사’로 사망한 이도 3,244명에 달한다. 후쿠시마, 이와테, 미야기 등 원전 사고의 직격타를 맞은 도호쿠 지방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한탄하고 있다. 

사고 후 일본 정부는 ‘원전 제로’를 선언, 국내 원전 48기를 모두 가동 중단했다. 공약이 깨어지기 시작한 건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한 2012년부터다. 아베 정권은 “규제 강화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며 원전 재가동을 공언했다. 그 간 에너지 수입량 증가로 무역 적자가 늘었으며, 원자력은 일본의 산업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정말 원전 없이는 살 수 없을까? 다시 방사능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최근 일본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열띤 토론의 주제다. 후쿠시마 사고 후 탈핵 운동에 뛰어들어 원전의 피해와 위험에 관해 이야기해 온 나가시마 카에데(長島楓, 19) 씨를 11일 만났다. 

 

한국 탈핵운동단체인 청년초록네트워크의 초청으로 10~11일 방한한 나가시마 카에데 씨를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부근에서 만났다.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한국 탈핵운동단체인 청년초록네트워크의 초청으로 10~11일 방한한 나가시마 카에데 씨를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부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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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카에데 씨는 후쿠시마 출신이다. 자연과 시 읽기를 좋아하던 15세 여고생은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핵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 낭독그룹 '씨앗을 뿌리는 토끼'을 결성, 각종 세미나와 포럼에 참석해 후쿠시마의 상황을 알려 왔다. 지금은 사이타마 현 독쿄대학(獨協大学)에서 국제환경경제학을 공부하며, 틈틈이 동아시아 지역 탈핵 운동가들과 만나 토론·연대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송전탑 건설을 놓고 한국전력과 지역 주민 간 대립을 빚어 온 밀양을 찾아 탈핵 공동 선언을 하기도 했다. 

카에데 씨는 “4년이 흘렀지만 후쿠시마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핵발전 중심 정책을 유지하는 한 후쿠시마의 비극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힘이 약해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서 자유, 행복과 미래를 빼앗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가공할 양의 방사능이 유출된 지 4년이 흘렀다. 현재 후쿠시마의 상황은 어떤가.

“전혀 나아진 게 없다. 피해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속도가 더디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에서 사용 후 연료를 꺼내는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모두 끝났다. 이제 지나치게 높은 방사능 수치는 검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저는 현재 도쿄에서 거주하지만 가족들은 후쿠시마에서 산다. 피해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면서 가족들이 사는 지역 주민까지 피폭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됐다는 기사를 봤는데,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 고등학생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고 탈핵 활동에 나섰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고가 나기 전까지 원자력 발전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생명이 걸린 문젠데 잘 몰랐던 거다. 게다가 탈핵이라는 목표는 참 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며 분노하고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거창한 목표 달성보다 작은 목표를 설정해서 조금씩 달성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큰 포럼 등에 참석,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다. 작년 8월 와세다 대학에서 참가자 8,000명 규모의 어린이·청년 포럼을 개최한 적 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이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실제로 일을 해냈다. 참 즐거웠다.” 

- 어떻게 시 낭독을 통해 원전과 방사능 문제를 이야기하게 됐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시 낭독을 배웠다. 그때부터 시를 참 좋아했다. 고2 때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짜증과 분노가 솟았지만,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더니 시 낭독이더라. 좋아하는 것을 제 무기로 만든 셈이다. 후쿠시마 사고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를 읽어 후쿠시마의 상황을 알리고 경각심을 줄 수 있다면, 사람들이 내 시를 들으면서 '핵과 후쿠시마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참 좋겠다. 

- 주변인들의 반응은?

“저를 말리거나 ‘하지 말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해 봐’, ‘힘내라’, ‘열심히 해’  처럼 격려를 많이 받았다. 일본 사회의 특성도 있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가 어려운데 ‘카에데라도 열심히 해줘’ 라는 말도 들었다. 이런 지지와 연대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특히 한국의 청년초록네트워크, 아시아탈핵연대 등과 함께 일하며 ‘연대의 힘’을 실감한다. 다만 해외에 자주 나가다 보니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이들은 있더라.”

-아베 신조 정부가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면서 일본은 ‘탈원전’에서 ‘원전 국가’로 회귀하려 하는 것 같다. 한국도 원전 비중이 높고, 수명이 다한 월성원전을 최근 재가동하기로 하는 등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땅덩어리도 작고 지진, 화산 분화도 잦은 일본에서 원전은 너무 위험하다. 후쿠시마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과 한국 월성원전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낡고 오래된 핵발전소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경우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취약한 부품이 파괴되면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의 월성·고리원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핵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후쿠시마는 앞으로 수백 년, 어쩌면 천 년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다. 한국도 그런 비극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 어떤 미래를 꿈꾸나.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힘으로 누르고 억압하지 않는 사회, 서로 연대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사람 인(人) 자를 보면 사람 둘이 서로 돕고 있는 모양이지 않나.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은 서로 돕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들을 낳게 되면 무엇이 옳다는 편견을 심어주거나 무엇이 반드시 옳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윽박지르지 않겠다. 스스로 핵에 대해 알고 선택할 권리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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