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짓밟힌 위안부 소녀들, 고향으로 돌아와야죠”

2013년 7월. 조정래 영화감독은 한 해 전 자신이 만든 ‘두레소리’(2012)의 주인공이었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합창단 ‘두레소리’ 공연을 보러 갔다가 한 여학생을 만났다. 순간 머리가 띵했고, 명함을 건넸다. 10여 년간 준비해 온 영화의 주인공과 마침내 만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여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때마침 가포스터 촬영 막바지였고, 그 여학생은 곧 합류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실화를 다룬 영화 ‘귀향’을 찍는 조정래(41) 감독과 주연 여배우 최리(21·중앙대 한국무용학과 2학년생)의 첫 만남은 예기치 않았다. 

“첫눈에 은경 역에 제격이다 싶었어요. 응해줘서 고마울 뿐이죠. 그때 최리양이 고3이었고 지금은 벌써 대학생이 되었네요. 보면 볼수록 참 강단이 있는 친구예요.”(조정래 영화감독)

영화 ‘귀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현재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한 소녀(은경)의 고통을 병치시켜 그 아픔을 함께 직시하고 치유하는 내용의 영화다. 과거 자신을 대신해 죽은 소녀를 그리워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어린 무녀 은경을 통해 다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원혼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귀향’으로 지었다. 최씨는 머나먼 곳으로 끌려가 학살당하다시피 한 위안부 소녀들의 혼령을 고향으로 부르는 무녀 ‘은경’역을 맡았다. 연기 경력이 없는 20대 초반 여성이 맡기에는 쉽지 않은 배역이다.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받고 방에 뒀는데 자꾸 눈에 들어왔어요. 그러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가 등장하는 꿈을 꿨어요. 다음 날 부모님께 말씀 드렸죠. 정말 생각이 난다고. 쉽게 허락해주셨어요. 또 제 전공이 살풀이거든요. 감정선을 끌어올릴 수 있다 보니 무녀 역할이 낯설지만은 않아요.”(최리)

조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한 건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방문한 조 감독은 우연히 한 작품을 보게 된다.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작품이었다. 중국으로 끌려간 강 할머니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병에 걸렸을 때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했던 장면을 기억하고 그린 그림이다. 15세 때 위안부로 끌려간 강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과 광복군 사이에 벌어진 교전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림을 본 후 구덩이 속에 불타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에 몸서리치면서 며칠 동안 심한 몸살과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유대인 학살이 이뤄진 아우슈비츠를 연상케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귀향’ 줄거리가 떠올랐고 어느 새벽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 내용은 꿈 내용을 받아쓰기 한 거예요.”(조정래 감독)

‘꼭 밝혀야 하는 역사’지만, 어린 나이의 최씨에게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눔의 집’을 방문하면서 결심은 확고해졌다.

“초심이 무너질 때마다 나눔의 집에 갔어요. 어느 날 강일출 할머니께서 1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제게 해주셨어요. 감나무집 딸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끌려갔는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을 때… 여러 상처를 보여주셨어요. 나눔의 집을 다녀온 후에는 한동안 밤마다 가위에 눌렸어요. 할머니들의 영혼이 제 옆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운명인가 보다 싶었죠.”(최리)

조 감독은 귀향을 ‘국민의 힘으로 만드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포털 ‘다음’의 ‘뉴스펀딩’을 통해 진행한 제작비는 애초 1000만원이 목표였지만, 1월 30일 마감한 결과 2억5000만원이 모아졌다. 지금도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오디션에서 뽑힌 국내 배우와 일본인 배우들 역시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일단 출연료 없이 출연(추후 수익이 생기면 배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무엇보다도 원로배우 손숙(70)씨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역을 출연료 없이 맡기로 했다.

“시나리오를 읽어보신 손숙씨가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 건데 나는 개런티 안 받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대신 수익이 나면 인센티브를 달라고 하셨어요.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겠다며. 매일 매일이 기적인 것 같아요.”

최씨는 극중 정민역을 맡은 재일동포 4세 강하나(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 2학년)양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저보다 한참 어린 15살 정민이에게 물었어요. 힘들지 않냐고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는 4월 15일 공식 크랭크인한다. 6월까지 일본과 국내 철원, 양평, 거창지역에서 촬영을 마칠 계획이다. 광복절인 8월 15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후원자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여는 게 목표다. 

조 감독은 촬영 전부터 쏟아지는 관심에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들께서는 잘 만들어달라는 말보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셨어요. 그것만큼 무서운 명령이 어디 있겠어요.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려요. 죽어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귀향시킨다는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문화적 증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귀향’의 후원 방법

계좌 이체: 우리은행 1005-002-173230, 예금주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문자 기부: #1365-2015, 건당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