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개발자가 되겠다던 나의 어릴 적 친구는 지금 멋지게 무역업을 하고 있고, 호텔리어로 첫발을 내디뎠던 선배는 지금 인테리어 사업으로 성공 가도를 걷는다. 늘 가정주부를 꿈꾸던 친구는 성공적인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면서도 아직 가정주부의 회귀를 외치고 있다. 필자도 그렇다. 광고를 해보겠다던 꿈과는 달리 첫 직업을 세일즈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도전하게 됐고 지금은 강좌와 집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호텔리어로 첫발을 내디딘 선배는 그곳에서 배우고 익힌 감각이 지금의 경쟁력이 됐고, 가정주부를 외치는 친구는 직원들에게 언제든 사업을 물려주겠다며 사심 없는 비전을 제시하며 사업을 한다. 한때 글을 쓰며 광고를 해보겠노라 했던 필자도 지금은 세일즈 화법을 만들고 책을 발간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그래서 계획을 세워본다. 설사 계획한 것이 있었다 한들 그대로 이루어지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저 앞에 놓인 현실에서 가장 ‘나’다운 최선의 결정을 하고 결정을 한 이후에 나의 결정을 믿고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히 고민하고 이루어 왔을 것이다. 단, 좋아하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서 떠나 보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해본다. 나이가 더 들고 꿈에 대한 구체적인 욕심이 없어지고 꿈을 그 자체로 즐기며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세월이 준 영양분에 힘을 받아 가슴속에 남아있던 무언가가 경쟁력이 되고 승부수가 되는 것이리라.
그날의 그 모임에서 필자는 40대 중·후반의 설레는 꿈 이야기를 들었다. 40대의 꿈 이야기에는 특유의 무게감과 설렘이 있었다. 그 설렘은 자기 자신을 흥분시키고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염되어 서로 무엇을 도울 수 있을 지를 고민하게 하는 무게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랬다. 40대가 꾸는 꿈은 20대 청년들보다 섬세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강한 확신과 가치가 묻어 있었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20년간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인지를 느껴왔기에, 또 주장이나 외침만으로 세상을 얻을 수 없음도 이해하고 있기에 그 꿈들의 생명력은 더 아름답고 강하다.
농담을 해 보았다. 지금 40대의 정신과 지혜로 20대의 젊음을 지닐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해 본다.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욕심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부질없어 보이는 수많은 청춘의 시간 속 경험들이 현재의 겸손함을,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 준 것이라 생각해보니 이 또한 값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이치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필자 자신을 포함한 40대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보다 중년?의 멋진 시기… 세상을 이제 알아가기 시작하니 이제야말로 진짜 꿈을 꿀 나이가 아닌가 말이다. 20대를 기억하고 그래서 마음만은 20대 그 시절보다 더 풋풋한 청춘인 40대가 꿈을 꺼내어 꿈을 꾸고 또 그 꿈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모습을 기원해 본다.
청년의 짙고 청초한 빛깔의 꿈이 세상의 현실 앞에 조금씩 흐려져서 이제 다시 또렷한 윤곽만 남았을 때 이제 비로소 더 아련하고 유혹적인 색깔로 그 꿈은 채워질 수 있으리라….
40대가 되어 이제 내 꿈의 윤곽을 바라보고 슬쩍 미소 지을 정도가 됐으니 이제는 붓을 들고 그 속을 채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이제 시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