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매화물 들것네! 양산 순매원에 봄이 왔다

햇살은 따뜻한 기운을 품고, 바람은 봄기운 머금고 불어온다. 겨울 위로 봄이 성큼 다가온다. 남녘에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 매화가 성큼 다가왔다. 낙동강변의 양산 순매원에는 매화가 화사하게 꽃을 피워 봄기운이 충만하다.

볼에 와 닿는 바람은 차지만, 봄기운 머금은 햇살에 따뜻함이 전해진다. 산정에 머물고 있는 눈에게 빨리 떠나라 말하기라도 하듯 남도에는 봄바람이 분다. 봄은 고양이 발걸음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지만 환한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봄을 알리는 꽃 중 가장 빨리 우리 곁으로 오는 것이 매화다.

낙동강에 봄바람이 불면 경남 양산 원동마을에 가장 먼저 매화 바람이 분다. 이파리도 나기 전에 희게 피어나는 매화는 육지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매화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3월 중순 무렵이지만, 초순부터 강변에 매화가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원동마을에서 매화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 매화농원인 순매원이다. 마을 곳곳에 매화가 피지만, 강변부터 산등성이까지 흰 구름 둘린 듯한 꽃대궐이 펼쳐지는 곳이다. 매화가 한창일 때는 김영랑의 시 “오메, 단풍 들것네 / 장광에 골 붉은 감닙 날러오아 /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메, 단풍 들것네”가 연상되며 ‘오메, 단풍 들것네’가 아닌 ‘오메, 매화물 들것네’로 바뀌며 탄성이 절로 인다.

순매원을 찾아가는 길은 간단하다. 경전선을 타고 원동역에서 내리면 된다. 역에서 순매원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다. 역 앞에서 순매원을 지나는 버스가 있지만 워낙 드문드문 다니기에 꽃 구경하며 걷는 게 편하다. 승용차를 이용해서 찾아갈 때도 원동역을 이정표로 삼으면 찾기 편하다. 단, 매화가 한창일 때는 순매원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원동역 앞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천천히 걷다보면 낙동강과 순매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푯말과 함께 전망대가 나타난다. 늘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장소다. 그 이유는 강, 기차, 매화가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의 유장한 물길과 하얗게 핀 매화, 그리고 그 사이를 질주하는 기차의 역동적인 모습을 한 앵글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순매원밖에 없다. 광양 매화마을에 비한다면 규모가 작지만 낙동강과 붙어 있어 강의 서정성이 더 강하게 와 닿는다. 더욱이 순매원과 낙동강 사이에 경전선 철로가 놓여 기차가 지날 때마다 봄소식을 전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순매원에서 매화의 진가를 경험하려면 매화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야 한다. 백매화, 홍매화가 무릉의 화원인 양 아름답다. 매화 송이를 곁에 두니 매혹적이다. 그 속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비를 맞아야 매화 숲의 참 진가를 경험하게 된다. 구석구석 화려한 향기가 퍼진다. 꽃구름처럼 황홀한 자태도, 가슴 깊이 스며드는 향이 더해지니 비로소 빛이 난다. 강바람이 실어다 준 매화 향이 코끝에 와 닿으니 고혹적인 향기에 온몸이 아찔해진다.

빨리 걷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한 걸음 옮겨 사진을 찍고 또 한 걸음 옮기면 매화가 유혹하는 탓이다. 걸음걸음 탐스러운 꽃을 추억과 함께 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치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우리들을 비참한 일상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이 알 수 없는 열병’이 여행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매화나무 아래를 걷는 것으로 봄날의 흥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순매원에서는 매화 아래 앉아 국수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에 파전 한 조각을 음미하며 봄날의 정취를 즐겨야 한다. 특히 갖은 고명과 함께 양푼에 말아 내는 잔치국수를 먹는 것은 순매원의 필수 코스다. 맛보다는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다. 아니 조금이라도 꽃 속에 머물고 싶어서다. 국수를 먹다가 바람에 매화잎이 흩날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만일 옛 선비들처럼 매화를 보며 시 한 수 읊으며 풍경을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강변로에 구름 깔리고 옥먼지 날리는데 / 은은한 향기 찾아내니 한 줄기가 새롭구나 / 평생토록 복사꽃, 오얏꽃 기뻐하지 않았지만 / 매화를 보고 나니 졸면서 봄을 지나노라.” -중국 남송 시인 육유의 ‘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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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 오봉산 임경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녀(전지현 분)가 “견우야 미안해. 나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봐” 하고 외치던 장소가 순매원 가까이에 있다. 순매원에서 물금읍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오봉산 임경대가 그곳이다.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위치해 낙동강과 그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신라시대에 고운 최치원이 낙동강 물에 비친 산 모습을 보고 마치 거울 같다며 시를 읊은 것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소설 ‘수라도’의 배경, 용화사

순매원에서 양산 물금으로 가는 길. 경부선 철로변 물금상수도취수장을 지나 용화사로 가는 길은 ‘황산베리끝’, 황산잔도라 불렸다. 1969년 한국문학상을 수상한 김정한의 ‘수라도’에 “그 당시의 ‘황산베리끝’ 하면 좁기로 이름난 벼룻길로서…”이라며 등장한 문학 배경지다. 수라도는 시기와 교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간다는 사후세계를 말한다.

구한말부터 광복 직후까지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허 진사 댁의 가족사와 한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작품이다. 절 한편에 소설 ‘수라도’ 기념비가 서 있다. 용화사 대웅전에는 보물 제491호인 석조여래좌상도 있다. 이 불상은 대좌와 광배를 갖춘 완전한 형태다. 높이 125㎝로 강 근처 밭에 있던 것을 1947년 2월 법당을 중수하면서 옮겨 왔다. 당당한 어깨, 풍만한 가슴, 양감 있는 팔다리의 표현이 입체감 있다. 반면 손이나 목 등 세부 표현에서는 형식화된 모습이 보인다.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김천 JC-대구부산고속도로-삼랑진 IC-삼랑진읍사무소 삼거리 좌회전-1022번 지방도-삼랑진역-신부암고개-원동면사무소-순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