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들끓자 학교 측 허겁지겁 대책 내놔

여학생들을 ‘위안부’ ‘빨통’에 비유 “파급력 강한 SNS에 실명·사진 공개”

“피해 여학생과 내부 고발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젠더감수성 교육 절실”

 

국민대가 학과 소모임 단톡방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언어 성폭력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욱이 내부고발자를 색출한다면서 가해자들이 단톡방에서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민대가 학과 소모임 단톡방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언어 성폭력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욱이 내부고발자를 색출한다면서 가해자들이 단톡방에서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민대(총장 유지수)에서 벌어진 카톡방 성폭력 사건이 여성신문 단독 보도를 통해 공론화된 후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사건은 국사학과 축구 소모임 ‘퍼니국사’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5월 공지사항을 알리기 위해 개설한 단톡방에는 남학생 32명이 가입했으며, 일부 학생들의 주도로 10여명이 여학생들의 사진과 실명을 올리고 성범죄 수준의 언어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여학생들을 ‘위안부’ ‘빨통’에 비유하고 ‘가슴은 D컵이지만 얼굴은 별로니 봉지 씌워서 하자’ ‘정액도둑X들’ ‘1억에 내 XX 물게 해준다’ 등 입에 담기 어려운 낯뜨거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학과 공식 행사에 함께 참석하자며 ‘가서 여자 몇 명 낚아서 회치자’ ‘박아보자 뚜시뚜시’ 등 충격적인 언어 성폭력을 가했다. 이들은 또 단톡방에서 야한 동영상 사이트와 모텔, 룸살롱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국민대 카톡방 성폭력 사건은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가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 성폭력을 오랫동안 저지른 데다 여성신문을 통해 사건이 여론화된 뒤에야 대학 측이 허겁지겁 대책을 내놓아 더 충격을 주고 있다. 학내 자치언론을 통해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이 2개월 전인데 대학 측이 전혀 사건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단톡방에서 제보자를 색출한다면서 가해자들이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남자끼리 그런 말쯤 그냥 할 수 있는데 왜 외부에 공개해서 학과 얼굴에 먹칠을 하느냐”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톡방 남학생들의 대화는 단순한 음담패설을 넘어 성범죄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간 모의’라는 지적도 나온 상태다. 더욱이 사학을 공부한다면서 여학생을 ‘위안부’에 빗댄데 대해 역사의식이 제로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런 학내 문화가 끔찍한 성폭력을 낳는 온상 아니냐”며 “남초방에서 생길법한 일로 관용을 갖고 넘어갈 수위가 아니다. 더욱이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파급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단톡방에 여학생들의 사진과 실명을 버젓이 올렸으니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말했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수십 명이 함께 보는 단톡방에서 특정 여학생들에게 성적 비하 발언을 했으니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특히 ‘강간 모의’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성폭력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단톡방에서 남학생들이 성범죄 수준으로 공공연히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만약 학과 MT라도 갔다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현재 피해 여학생은 가해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대가 성폭력 추방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우선 가해자 징계와 피해자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 차원의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생을 상대로 젠더감수성 교육도 해야 한다. 대동제나 동아리한마당,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학내 행사 때마다 성폭력 예방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학생수첩에도 성폭력 예방 수칙을 게재해야 한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국사학과에서 가해자들을 세분화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가해자들 가운데는 주동자도, 적극적 가담자도, 소극적 가담자도 있다. 이화영 소장은 “가해자 중 반성하는 학생들은 따로 모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인권 감수성이 낮은 학생들은 다른 그룹으로 묶어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학생들은 가해자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언어 성폭력이 오고가는데 가만히 있었던 것도 암묵적 방조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전교생 교육보다 이런 섬세하고 촘촘한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며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토론식 강의가 이뤄져야 한다. 대학 내에서 함께 규칙을 정해야 학내 문화가 바뀐다”고 덧붙였다. 젠더감수성 교육은 인권감수성 교육이다. 신체에 대한 성적 비하나 놀림이 인권 침해임을 알려주고 술을 마실 때나 대화 시 지켜야 할 예의 등을 알려주는 에티켓 교육이기도 하다. 일상의 성폭력에 둔감해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젠더감수성 관련 과목을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경 소장은 “대학이 스펙을 쌓는 곳으로 전락했음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라며 “인권감수성, 젠더감수성을 길러주는 교양과목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내부고발자와 피해 여학생들의 보호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웹툰작가 최규석씨가 트위터를 통해 내부고발자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사과한 데서 알 수 있듯 “괜히 큰 문제가 아닌데 언론에 알려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내부고발자의 학교 생활이 이 일로 힘들어지지 않도록 대학 측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피해 여학생들이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여론이다.

반성폭력 학칙을 전면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대 학생생활상담센터 관계자는 “학칙에 반성폭력 규정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규정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반성폭력 학칙이 있는지조자 모르는 학생이 많다. 여성신문에 카톡방 성폭력 사건을 제보한 한 학생은 “국민대는 총여학생회가 없고 총학생회 안에 여성국만 있는 상태다. 반성폭력 학칙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당국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학내 성폭력 근절에 전방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