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아틀리에서 본 서촌 풍경 만나볼까
옥상 아틀리에서 본 서촌 풍경 만나볼까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2.23 17:20
  • 수정 2018-02-23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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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서 가난한 전업 화가로
“서촌 그림 역사서 쓰듯 서촌을 계속 그리고 싶다”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에서 서촌의 옥상화가로 변신한 김미경씨는 “나는 무면허 화가”라며 “자격증이 있어야 세상일을 하는 줄 알지만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면허증이 없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에서 서촌의 옥상화가로 변신한 김미경씨는 “나는 무면허 화가”라며 “자격증이 있어야 세상일을 하는 줄 알지만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면허증이 없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아놓은 재산이 많은 ‘골드 싱글’도 아니다. 그런데 멀쩡하게 잘 다니던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자리를 때려치우고 쉰네 살의 나이에 전업 화가로 변신했다. 월세를 걱정하고 땡볕에서, 겨울 찬바람 속에서 하루 8시간씩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도 행복했다.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서촌의 갤러리 류가헌에서 첫 개인전 ‘서촌 오후 4시’를 여는 ‘옥상화가’ 김미경(55)씨 이야기다.

김씨는 ‘인터넷 한겨레’ 뉴스부장, 한겨레신문사 여성 잡지 ‘허스토리’ 편집장 등을 지내며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뉴욕으로 삶터를 옮겨 2005년부터 7년간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일했고, 2012년 귀국 후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다 지난해부터 전업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맞춰 같은 제목의 산문집도 낸다. 뉴욕 생활을 담은 『브루클린 오후 2시』의 뒤를 잇는 시간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오후 2시가 가장 뜨겁고 화려한 시간이라면, 오후 4시는 해가 서쪽으로 훌쩍 넘어가기 시작하는 시간이에요. 그림자도 짙어지고, 마음도 깊어지죠. 『서촌 오후 4시』는 인생의 오후 4시를 서촌에서 보내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면서, 오후 4시만큼 무르익은 서촌의 풍경이기도 해요.”

전시에는 서촌 옥상에서 펜으로 그린 세밀화 50점이 선보인다. 수직과 수평으로 엇갈리고 때로는 곡선으로 휘어지는 선들이 정교하고 섬세하다. 40×30㎝짜리 그림 한 장을 그리는 데 100시간가량 걸린다. 그렇게 1년 간 그린 펜화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김미경 작 ‘서촌 옥상도 II’, 84cm X 29.4cm, 펜화.
김미경 작 ‘서촌 옥상도 II’, 84cm X 29.4cm, 펜화.

서촌은 경복궁 서쪽 마을을 가리킨다. 그는 대학 시절 이곳에서 3년간 자취했고, 미국에서 돌아온 후 다시 서촌에 터를 잡았다. 동네 옥상에 올라 풍광을 처음 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인왕산 아래 한옥과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적산가옥들, 현대식 빌라, 주택들이 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옥상을 아틀리에로 삼고 그림을 그렸다. 땅에서 볼 수 없던 구도의 풍광이 펼쳐졌다. 청와대가 가까워 개발이 제한된 서촌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길거리와 옥상을 돌아다니며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서촌의 옥상화가’란 별칭이 붙었다. 그의 ‘그림쌤’은 박재동 화백이다. 서른살 때 한겨레 동료인 박 화백의 권유로 사내 동호회에 들어가 그림을 배웠다. 5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다. 몸이 계속 아파왔다. 나중에는 완전히 드러누웠다. 급기야 직장까지 그만뒀다.

“나는 무면허 화가예요. 미술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사랑하기, 숨쉬기, 걷기, 춤추기, 노래하기, 그리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등 세상살이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모두 자격증이 필요 없죠. 자기 삶이 쌓이면 자기 색깔이 나온다고 믿어요.”

 

김미경 작 ‘서촌옥상도 V’, 84cm X 29.4cm, 펜화.
김미경 작 ‘서촌옥상도 V’, 84cm X 29.4cm, 펜화.

직장을 버리고 자유를 택한 것은 뉴욕 생활이 남겨준 유산이다. “천둥벌거숭이로도 존엄할 수 있는 내 속 존엄성의 알갱이”를 뉴욕 생활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리에 앉아 있는 현재의 내가 바로 존엄한 나라는 걸 깨달았다”며 “존엄한 내가 어디 따로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어떤 자리든 자체 발광해서 비춰주면 된다는 것이다. “폼 나는 자리에 가서 귀퉁이에 있는다고 주변이 밝혀지나요. 험한 데 가서 빛을 발해야죠.”

가난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생계를 위해 일주일에 사흘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예전의 부하 직원들에게 빵을 팔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가난 앞에 당당하게, 의연하게, 행복하게 산다는 거죠. 예전보다 조금 가난해졌지만, 조금 많이 행복해졌어요.” 페미니스트인 그에게 삶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핵심 철학은 내 밥벌이는 내가 한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막일 하면서 그림 그리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다. 먹고살 만해서 겉멋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가족의 등골을 빼면서 폼 잡고 사는 게 창피한 일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후배에게 ‘내가 미친 것 같아. 왜 이러고 살까’ 그랬더니 한마디 하대요. ‘선배, 미쳤어요!’. (웃음) 나는 내 그림을 팔아서 먹고살 거예요. 서촌 그림 역사서를 쓰듯 서촌을 계속 그리면서요.” 전시는 3월 1일까지. 월요일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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