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정치적 타결 대상 아냐
위안부 문제, 정치적 타결 대상 아냐
  • 정진성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5.02.12 17:51
  • 수정 2018-02-23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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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인권은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발전해 왔다. 서양에서 인권의 개념은 자유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그 영역이 중산층 남성으로부터 여성과 유색인종에까지 확장돼 왔다. 일본에서 신권(臣權)이 중심이었던 메이지 헌법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제정된 평화헌법에서 민권(民權)으로 정착된 역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 말 민주화의 성취에 따라 억눌렸던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이 봇물 터지듯 사회에 분출됐다. 이제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인권은 외교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지 않는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특히 그 어떤 인권 이슈보다 정치와 외교의 맥락 한가운데 있다. 식민지 수탈의 극악한 모습으로 여성들을 일본 군인의 성노예로 만든 이 문제가 동서양의 냉전 구도 속에서 60년이나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우리 사회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9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을 뒤로하고 서구의 비판을 정면으로 받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크게 각성되던 전시 성폭력 문제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1996년까지 일본 정부의 노력이 어느 정도 진전되다 자민당 정부 복귀 후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해 역사 교과서 기록도 다시 없어지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시들해진 듯했다. 이 문제는 2007년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국내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는 판결이 나오고,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결의가 통과된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말부터 급격히 냉각된 한·일 관계의 중심에 위안부 문제가 자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3년이 돼 가도록 한·일 관계는 풀어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첫 단추로 꼽고 있는 것은 감개무량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중요하게 인식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만 한·일 관계가 풀린다”는 현재의 한·일 정부의 인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인권은 외교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 외교에 의해 무시되기도 했다. 지금 매우 다각적이고 복잡한 한·일 관계에서 볼 때 “위안부 문제 때문에 발목 잡힌” 현 상황을 풀기 위해 위안부 문제가 정치적 타결의 산물이 될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위안부 문제는 지금도 부단히 역사적 사실이 발굴되는 와중에 있으며 단지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막대한 규모와 정도로 자행됐던 인권침해의 문제다. 이것이 꽉 막힌 한·일 관계의 원흉으로 인식돼 퇴로를 위한 해결책으로서 정치적으로 타결된다면 인권의 원칙이 퇴색되고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의 피해 문제 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위안부 문제가 이처럼 한·일 외교의 전면에 서게 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지만 이것이 결코 외교적 타결의 산물이 돼서는 안 된다.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각성이 더 진지하게 성숙돼야만 비로소 풀릴 수 있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계속 전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주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환경, 안보 등의 중요한 한·일 간 문제들을 긴밀하게 공조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외교적 기술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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