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이래 최연소 총장이자 이공계 첫 총장
세계적 수준의 융합 전공 육성 “선구자 정신이 이화의 DNA죠”
산학 연계 인턴십과 현장 실습 강화 “여성학, 제도교육 안에 정착”

 

개교 130주년을 앞둔 이화여대는 53세의 젊은 총장이 이끌고 있다. 최경희 총장은 5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교육의 새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개교 130주년을 앞둔 이화여대는 53세의 젊은 총장이 이끌고 있다. 최경희 총장은 5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교육의 새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886년에 태어났으니 내년이면 개교 130주년이다. 국내 최초, 최고 대학의 타이틀을 가진 이화여대가 요즘 부쩍 ‘혁신 이화’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8월 최경희 총장이 취임한 뒤부터다. 53세 총장이 이화의 간판으로 등장한 의미는 뭘까.

지난 5일 이화여대 본관 접견실에서 마주한 최 총장은 ‘혁신의 전도사’였다. 부드럽지만 강단 있게 혁신의 의미를 설파했다. 이화가 1980년 이래 최연소 총장이자 이공계 첫 총장으로 그를 낙점한 배경이 짐작됐다. 그만큼 대학 구조개혁을 이끌 젊고 추진력 강한 선장을 필요로 했다는 얘기다.

마곡병원 건립, 기숙사 완공 “할 일 태산”

이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전체 대학의 입학 정원이 2023년 이후 30%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면서 요즘 대학가의 핫이슈로 구조조정이 떠올랐다. 최 총장은 “여성교육의 새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내세운 이화의 비전은 ‘세계 최고를 향한 혁신 이화’다. 조직·인재·인프라 혁신, 이화 DNA(Dream & Achievement) 네트워크 구축, 이화 글로벌 브랜드 파워 제고, 사회적 기여와 나눔 확산이란 전략 아래 2020년까지 세계 10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다.

-취임 반년을 맞은 소감은.

“바빴다(웃음). 총장 몇 년 한 것 같다.”

-혁신 리더다. 쉽지 않은 일인데.

“오해도, 원망도 있지만 일희일비하면 어떻게 일하겠나. ‘혁신 이화’를 비전으로 내세웠지만 선배들도 그렇게 해왔다고 믿는다. 변화와 혁신 없이 어떻게 최고가 됐겠나. 외부에서 ‘대학 정원 30% 감소’의 풍랑이 밀려오고 있다. 이 파고를 이기고 굳건하게 서려면 많은 진통이 따를 것이다. 뼈를 깎는 아픔이지만 이겨내야 한다.”

-교육 혁신은 우수 학생 유치에서 나온다.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교육과정, 학생들이 원하는 교수학습 환경을 만드는 게 제 임무다.”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과정인가.

“내년 봄학기에 신산업융합대학을 신설한다. 신산업 융합지식 중심 학부로 개편을 준비 중이다. 예컨대 식품영양학과는 외식업, 국제사무학은 마이스(MICE) 산업과 연계해서 강의를 듣게 된다. 융합콘텐츠학, 스포츠과학, 융합보건학, 의류산업학도 집중 육성한다. 사실 우리 학교가 인턴십이나 산업적 수요에 맞춘 교육과정은 다소 약했다. 신산업융합대학은 첫 졸업생 취업률 85% 달성이 목표다. 이화는 전공뿐 아니라 교양교과목에서도 융합교육을 해 왔다. 그 역사가 길다. 당시 자연계열 교양 핵심 과목을 내가 가르쳤다. ‘과학, 삶, 미래’란 과목이었다. 300∼400명씩 들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음대, 미대 학생들이 많이 들었다.”

-올해 뇌·인지과학전공과 화학신소재공학부도 신설했는데.

“뇌·인지과학전공은 국내 최초 학부 과정이다. 둘 다 융합 전공인데 학생들의 호응이 뜨겁더라. 경쟁률이 30 대 1 이상이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세상의 흐름은 분명 융합이 대세”라며 “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융합 인재’를 기르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세상의 흐름은 분명 융합이 대세”라며 “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융합 인재’를 기르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 총장은 “세상의 흐름은 분명 융합이 대세”라며 “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융합 인재’를 기르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칸칸이 나뉜 학문 간 장벽을 허물어 인문학, 과학이나 IT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창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산학 연계 인턴십과 현장 실습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대 목동병원에 이은 첨단 국제 병원도 새롭게 문을 연다. 그는 “2018년 마곡병원이 개원하면 세계인들이 찾는 의료 전문기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16년 완공을 목표로 2300여 명의 학생이 입주할 수 있는 신축 기숙사를 짓고 있다. 대구 출신인 그는 “서울로 유학 와서 모교에 다닐 당시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졌다. 하숙과 친척집을 옮겨다니느라 참 힘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 총장은 “기숙사는 우수한 지방 학생을 유치하는 데 큰 핵이다. 그런데 환경 훼손을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하니 안타깝다”며 “안전한 공간을 원하는 여학생들의 기대가 꺾이지 않도록 협조해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여성 리더 산실에서 글로벌 교육 선두로

이대는 개교 이래 여성 리더를 배출하는 화수분 역할을 해왔다. 출발은 소박했다. 1886년 미국인 선교사가 학생 한 명을 가르치면서 여성 교육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어 지난해 기준 11개 대학, 15개 대학원, 68개 전공, 2만5000여 명의 재학생, 20만여 명의 동문, 1000여 명의 교수진을 보유한 여대가 됐다. “한국 최초 여의사,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 한국 최초 여성 헌법학자 등 수많은 ‘최초’ 기록을 갖고 있죠. 세계 최초의 여성 공과대학뿐 아니라 의대, 법대, 약대까지 골고루 갖췄고요.” 최 총장은 “당연히 서울대인 줄 아는데 1946년 우리 학교가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았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랜드마크도 이화 아닌가요”라며 환히 웃었다. 이화의 아름다운 캠퍼스가 관광 명소가 된 지는 오래다. 지난 한 해 동안 이화웰컴센터를 방문한 외국인은 1만3650명에 이른다. 최근 3년간 학부과정 외국인 학생 수도 50% 이상 늘었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합쳐 650여 명에 달한다.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제’ 인증 대학이기도 하다. 최 총장은 “이화는 외형상으로는 여대지만 남녀공학 대학 어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한국 여성 지도자의 산실에서 이제는 글로벌 리더의 요람이 됐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이화가 진행 중인 글로벌 여성 프로젝트가 많다.

“이화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그램(EGPP)은 세계 여성 인재 육성을 위해 시작한 한국 최초의 개발도상국 여성 인재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는 학위과정(학사·석사·박사)이다. EGPP 장학생 중에는 우리 학교를 졸업한 후 본국에서 대학 교수로 활동하거나 태국 삼성전자나 베트남 신한은행, 중국 LG전자같이 현지 한국 기업에 취업한 학생들도 있다.

이화 글로벌 임파워먼트 프로그램(EGEP)은 여성인권과 공공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비정부기구와 공익부문 리더를 이화로 초청해 2주일간 진행하는 비학위 교육과정이다. 개발도상국 여성 공무원에게 1년간 전액 장학금을 주고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돕는 이화-KOICA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화의 나눔 정신을 세계로 확산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5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화의 여성학도들은 21세기 여성주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전문가들”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5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화의 여성학도들은 21세기 여성주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전문가들”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화는 페미니즘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가 시대를 따르기보다 시대가 우리를 따를 것”이라는 이화 선배들의 정신을 실천한 역대 총장들이 여성학을 제도화했는데.

“아시아 최초로 여성학을 제도교육 안에 정착시켰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1982년에 석사과정이 시작됐고 올해 2월 졸업생을 포함해 석사 296명, 박사 34명을 배출했다. 이화의 여성학도들은 21세기 여성주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전문가들이다.”

-요즘 여자대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여대의 존재 가치는 여성 역할이 강조되는 21세기에 더 높아졌다. 힐러리 클린턴, 매들린 올브라이트 두 전직 여성 국무장관도 명문 여대인 웨슬리대를 졸업했다. 미국도 여성 리더들이 여대를 많이 나왔다. 김활란 초대 총장이 ‘여성과 남성 국회의원 수가 같아질 때까지 여대는 존재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다. 아직 15%에 불과하니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 되는 건 먼 미래의 일이 아닐까.”

-지난달 서울지역 6개 여대 총장단이 황우여 사회부총리와 조찬 간담회를 가졌는데.

“여대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 기준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이화만 보더라도 그렇다.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데 너무 대우가 잔인하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충분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라.”

-어떤 평가가 문제인가.

“우리 학교가 대외 평가에선 종합대학 5위쯤 된다. 그런데 국내 언론사 평가에선 10위다. 평가 지표가 여대에 불리하다. 대기업 인사팀장, 고교 진학 담당자에게 평판도 조사를 한다. 여성 취업률이 남성보다 낮은 데다 주로 남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니 불리할 수밖에 없다. 취업률도 마찬가지다. 이화의 경우 이공계가 전체의 20%니 취업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여대생 유학 비율이 낮으니 국제화 지표도 사실 여대에 불리하다. 이런 고려 없이 평가하니 이화의 가치나 역량은 늘 절반이 깎여서 들어간다.”

과학교육을 전공한 그는 미국 템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모교로 돌아와 후진을 기르면서 학생처장, 연구처장, 사범대학장을 역임했다. 중간에 청와대로 옮겨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2006∼2008)도 지냈다. 싱글인 그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유럽을 만난다 과학을 읽는다』『어떻게 다르지』 등 과학교양서의 저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최 총장은 “이화는 글로벌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학교”라며 “자기가 공부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후배들에게 지식을 전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뿌리 깊다. 받은 만큼 베풀어준다는 선구자 정신이 이화의 정신이다. 이런 이화의 DNA는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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