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숨비소리’는 제작자 남편이 준 생일선물”

 

연극 ‘숨비소리’ 개막 다음날인 4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이재은은 “연극은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반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강렬한 애정을 보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극 ‘숨비소리’ 개막 다음날인 4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이재은은 “연극은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반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강렬한 애정을 보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특수분장을 하느라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사진 촬영은 해도 괜찮아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푹 눌러쓴 모자. 여기에 펑퍼짐한 후드티까지. 연극 ‘숨비소리’ 연습을 앞두고 만난 배우 이재은(35·사진)은 천생 배우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전에 자신의 연기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몇주째 이어진 강행군 탓에 목소리가 쉬어 있었지만 일에 관한 대화를 할 때는 눈빛이 빛났다. 지난 몇년간 ‘첼로의 여자’, ‘선녀씨 이야기’, ‘각시품바’ 등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던 그는 이번에는 70대 치매에 걸린 어머니 연기에 나섰다. 

“드라마에서 할머니 역을 한 적이 있지만 연극에서는 처음이에요. 치매를 앓고 있는 70대 할머니와 그의 아들이 서로 겪어야만 하는 갈등과 그들의 추억 속 감동을 담았어요. 연극은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반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요. 드라마나 영화는 개봉하고 피드백이 오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리는데 연극은 아니잖아요. 그 부분이 조금 무서우면서도 설레요.”  

연극 ‘숨비소리’는 치매에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다. 제주도 방언인 ‘숨비소리’는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를 일컫는다. 어머니의 한을 숨비소리에 빚대, 우리네 어머니의 깊은 숨소리를 들려 드리자는 뜻이 담겨있다. “외할머니께서 어린 시절 치매로 돌아가셨어요. 연극을 하면서 많이 생각이났죠. 대중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듣고 제가 가진 색깔을 입히려고 노력했어요.”

 

이재은은 연극 ‘숨비소리’가 끝난 후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한국무용을 전공한 남편과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재은은 연극 ‘숨비소리’가 끝난 후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한국무용을 전공한 남편과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85년 드라마 ‘적도전선’으로 데뷔한 이재은은 이듬해 ‘토지’에서 어린 서희로 등장해 시청자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나이 고작 여섯 살이었다. 이후 ‘하늘아 하늘아’ ‘조광조’ ‘한명회’ ‘인어아가씨’ 등에 출연하며 연기경력을 쌓았다. 

잘나가는 스타였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었던 기억도 많다. 그는 방송에서 “아버지가 IMF에 사업을 실패하며 빚더미를 안겨 빚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다.

“예전에는 형편상 일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쉰 적이 없었어요. 불만은 있었지만 뿌리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어요. 친구들하고 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은 힘든 상황이 안 닥쳤으면 내 삶을 치열하게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그때 아니면 또 그런 경험을 못했을 거라고….”

그가 휴식을 취한 건 2006년 무용가 이경수씨와 결혼한 뒤다. 당시 이재은은 울산시립무용단 상임 안무자인 이씨와 9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열애 2년 만에 결혼했다.

“결혼 후 2년을 쉬었어요.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결혼 당시에는 (일을) 안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신혼살림을 경기도 남양주에 차렸는데 새로운 데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었고, 운동하러 바깥에 나가보면 시선도 있어서 부담스러웠어요. 제 자신이 바보 같고 시체놀이를 하는 기분이었죠. 내가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었나 싶고. 살아 있어도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재미가 없었어요.”

그는 일을 쉬면서 연기에 대해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했다. 자신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면서 단단해질 수 있었단다. 

“2013년 연극 ‘첼로의 여자’를 만나면서 활기를 되찾았어요. 사회와 소통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는 여인을 연기했는데 저와 비슷한 상황이기도 했고,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또 사람들이 저에게 보내는 관심도 참 고맙더라고요.”

제작자인 남편 역시 그에게 큰 의지가 됐다. 그는 남편에 대해 “든든한 최측근”이라면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14년 뮤지컬 ‘샤먼아이’ 안무도 남편이 맡았고, 종이 인형극 ‘스토리시어터’는 부부가 공동 제작했다. 이번 연극 역시 남편이 제작을 맡았다.

“저는 대중예술 쪽이고 남편은 순수예술 쪽이에요. 둘이 어우러지면 시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같으면서 다르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죠. 티격태격하면서도 예술로 통하는 것이 있어요. 둘이서 뭔가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좋아요. 남편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훌륭한 선택인 것 같아요.”

이재은은 연극 ‘숨비소리’가 끝난 후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한국무용을 전공한 남편과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선택지를 찾고 싶어요. 문화 콘텐츠를 같이 만들어서 내놓고 싶어요. 지금은 현장에서 많이 배우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는 마지막으로 3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하는 연극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관객들이 ‘숨비소리’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엄마는 지금 무엇을 할까’ 정도만 이라도 생각한다면 만족할 것 같아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