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어머니-전처 자녀는 ‘인척’… 상속 못 받아
“유산 상속 불이익 주는 것 아니냐” 반발도
‘황혼 재혼’ 후 상속 분쟁 두려워 동거하는 노노 커플들

 

일러스트 이미지 김성준 ⓒ여성신문
일러스트 이미지 김성준 ⓒ여성신문

경기도 과천시에 사는 김성철(58)씨 부부는 지난 30년간 친모처럼 각별했던 새어머니만 떠올리면 걱정과 원망이 반반씩 솟는다. 아버지와 사별 후 수년간 치매를 앓아온 새어머니는 근래 친정 조카와 부쩍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얼마전에 조카가 거처도 알리지 않은 채 새어머니를 지방으로 모셔갔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2남1녀에게 알리지 않은 채 법정 상속분보다 더 많은 재산을 계모에게 물려준 사실이 드러난 후 갈등은 시작됐다. 김씨는 “아버지 유산도 실은 친어머니가 젊었을 때부터 고생해가며 일군 재산 아니냐”면서 “새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전혀 엉뚱한 조카에게 유산이 모두 간다니 억울할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민법은 원래 새어머니와 전처 자녀 관계를 ‘법정 혈족’으로 규정해 상속권을 인정했으나 1991년 법 개정 시 이 조항을 없앴다. 계모와 전처 자녀가 ‘인척’이 되면서 상속권도 사라졌다.

계모가 작고할 경우 재산은 계모의 자녀(1순위), 계모의 부모(2순위), 계모의 형제자매(3순위), 계모의 4촌 이내 방계혈족(4순위) 순으로 상속된다.

최근 재혼 가정이 크게 늘면서 상속 문제로 인한 법정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씨처럼 계모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이 친정 조카인 경우 거부감이 크다. 전혀 재산 기여도가 없는 엉뚱한 친정 조카에게 유산이 가는 데 대한 반감이다.

이와 달리 경제력 있는 여성 쪽에서 황혼 재혼 후 자기 재산이 나중에 전처 자녀에게 갈까봐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내가 죽은 다음 내 재산이 누구에게 가느냐’고 묻는 여성들의 상담 문의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고 말했다.

아예 상속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황혼 재혼을 기피하는 사례도 흔하다. 공기관 임원을 지낸 하성주(70)씨는 애인은 있지만 재혼은 할 생각이 없다. 20억대 자산가인 그는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와 10년 전 사별했다. 하씨는 “아들이 둘인데 내가 재혼하는 걸 싫어한다”며 “여러 해 깊게 사귄 애인이 있지만 재산이 얽히는 게 걱정스러워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장은 “자녀가 ‘(아버지가) 재혼하고 싶으면 하시되 혼인 신고는 하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자녀들이 반대해 혼인 신고도 못한 채 동거하는 노인들도 꽤 많다”고 전했다.

법조계와 여성계에선 계모와 전처 자녀 간에 상속권이 사라진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새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친아버지와 계모가 친권자로 아이를 키웠고, 친어머니는 친권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91년 시행된 민법에 따라 이제는 친어머니가 친권자가 될 수 있다. 이혼 후 친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하는 비율도 80% 가까이 될 만큼 크게 늘었다.

법무부 상속법 개정위원회 개정위원장을 지냈던 김상용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계모가 전처 자녀 얼굴도 모르고 왕래도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91년 이후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이 생기고 양육비 청구 사례가 늘면서 친어머니가 대부분 전처 자녀를 키운다. 그런데 계모가 자기 재산을 얼굴도 모르는 전처 자녀에게 줘야 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해법은 세 가지다. 우선 계모와 전처 자녀의 관계가 좋을 때는 계모가 전처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면 된다. 이 경우 전처 자녀는 법에 따라 상속권을 갖는다. 아니면 계모가 자기 재산을 전처 자녀에게 주겠다는 유언을 남기면 된다.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을 내는 것도 방법이다. 유류분이란 배우자나 자녀가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속분을 말한다. 현행 법정 상속분은 배우자와 자녀가 1.5 대 1이다. 그런데 법정 상속분보다 적게 받을 경우 소송을 하면 법정 상속분의 절반은 받을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