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성·나이·능력혐오 표현 일상화
‘개념녀’와 ‘김치녀’로 구분해 여성 혐오를 여성 문제화하기도

 

온라인 상 여성 혐오 표현이 일간베스트 뿐만 아니라 대형 포털 사이트와 유명 커뮤니티 등 공개 게시판 곳곳으로 깊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온라인 상 여성 혐오 표현이 일간베스트 뿐만 아니라 대형 포털 사이트와 유명 커뮤니티 등 공개 게시판 곳곳으로 깊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 혐오가 온라인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혐오 발언의 무대로 일컬어지는 ‘일간베스트(일베)’뿐만 아니라 대형 포털과 유명 사이트 등 공개된 게시판 곳곳에서 여성 혐오 표현은 쉽게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던 여성 혐오가 오프라인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군은 트위터에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며 여성혐오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발언으로 페미니스트가 한동안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KBS ‘개그콘서트’는 온라인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는 ‘김치녀’를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가 위험 수위에 다다르자, 최근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가 김수아 서울대 기초연구원 강의교수에게 의뢰해 디씨인사이드, 다음 아고라 토론방, 네이버 뉴스 댓글란, 일간베스트, 네이트판 등 5개 사이트를 분석해 ‘온라인상 여성 혐오 표현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놨다. 여성단체가 온라인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 표현을 모니터링하고 여파와 문제점에 대해 분석한 첫 연구 보고서다.

전체 한국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치달아

연구팀은 여성 혐오를 ‘여성에 대한 증오와 멸시, 편견을 포함하는 정서’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여성 혐오 표현을 여성의 외모·성과 여성성·연령·능력을 소재로 비하하거나 멸시하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으로 구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외모를 소재로 하는 경우, 못생겼거나 뚱뚱하다는 이유로 싫다거나 혐오스럽다는 것을 넘어, 죽이고 싶다는 표현까지 한다. 단순한 외모 비하가 아니라 강력한 혐오 표현이다. 외모에 대한 멸시 표현이 성형에 대한 비난과 결합해 성형 괴물의 준말인 ‘성괴’로 드러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성형에 대한 비난은 한국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된다. 성형수술을 한국 여성의 특질로 간주해 편견을 양산하는 것이다.

성과 여성성을 소재로 하는 경우에는 신체의 일부와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가 비하 표현을 위해 자주 변형되고 결합돼 사용됐다. ‘보슬아치’(여성 생식기의 속된말과 벼슬아치의 합성어)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일반화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익명성으로 욕설이 심하다고 평가되는 디씨인사이드, 여성 혐오적 게시글로 비판받는 일베는 물론,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엠엘비파크나 오늘의 유머, 네이트판 등에서도 등장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엠엘비파크나 오늘의 유머 등 커뮤니티 규제가 존재하는 곳은 이를 일부 여성 집단으로 지정해 여성 일반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보슬아치’가 실제 현상이며 여성이 그러한 속성을 지닌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연령을 소재로 하는 여성 혐오의 대표 단어는 ‘상폐녀’다.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가치가 없어 주식시장에서 상장 폐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일베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네이버 뉴스 댓글이나 네이트판 등 다른 사이트에도 퍼져 있으며, 이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이가 많은 여성의 가치를 폄하하는 표현이 발견됐다.

극단적 표현까지 등장

이번 조사에서 여성에 대한 공격과 위협을 포함하는 특정한 표현과 신조어 등이 사용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일베에서 만든 ‘삼일한’(여자는 삼일에 한 번 패야 한다)은 디씨인사이드, 네이버 뉴스 댓글 등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면서 ‘311’로 변형돼 사용되고 있었다. 흔하진 않지만 해외에서 문제가 된 살해 위협이나 폭력 조장의 표현은 성적 위협과 결합해 강간을 하겠다거나, 성기에 대한 폭력 표현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전깨’(보지에 전구를 넣고 깨야 한다)와 같은 단어가 극단적 폭력 표현의 일례다. 디씨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에서는 강간을 범죄가 아닌 당연한 것처럼 취급하는 댓글이 등장했고, IS에 납치된 소녀들에 대한 네이버 기사 댓글에는 ‘한국 여성들도 저런 데 보내야 한다’는 표현이 사용됐다. 강간은 초성만 따서 ‘ㄱㄱ’으로 쓰이고 있었다.

조사 결과, 앞서 소개한 표현들과 자주 겹쳐 등장하는 단어는 ‘김치녀’였다. 김치녀는 ‘남성의 돈을 밝히고, 경제력으로 평가하고 남성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려고 한다’는 의미로 더치페이, 결혼 비용 문제에 대한 온라인 게시글에서 흔히 쓰이고 있었다.

연구팀은 “일베의 경우 폭력적인 표현과 광범위한 여성 혐오 담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 정서는 극단적이고 일베와 같이 폭력적인 표현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가 확산되며 “여성 스스로 ‘개념녀’가 되고자 노력하고, 여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김치녀·탈김치녀’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 “실제로 비난받아 마땅한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고착시킨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네이버 뉴스 댓글 기능 중 ‘공감’ 숫자에서 여성 혐오 정서가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제시했다. 실제 네이버 뉴스 댓글 중 강간범과 수용해 강간을 당하게 해도 마땅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에도 댓글에 공감한다는 뜻의 ‘공감’ 수가 ‘비공감’ 수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연구팀은 “신자유주의하에서 특정 계층의 여성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여성의 지위가 상승된 것은 아니며, 차별과 양극화는 점차 심각해지는 중”이라며 “성별 대결 구도로 구성된 현재의 온라인 공간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결국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 혐오 정서로 대표되는 현재의 젠더 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해 나갈 것인지 민·관과 이용자의 협력적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비판적으로 접근·비교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 상시적인 모니터링 체계 구축, 대형 포털사이트의 자율 규제 강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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