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관계없이 예비선거에서 ‘톱2’ 뽑아 본선 치르는 방식
“정치권 진입 여성 신인에게 득표수 5∼10% 가산점 줄 필요 있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통한 공천 개혁을 주장해온 박영선 의원(55‧3선)은 “오픈프라이머리는 부지런한 여성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며 “다만 여성 신인에게는 정치권 진입 장벽을 낮춰주기 위해 득표수의 5~10%를 가산점으로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1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민주화가 2012년의 화두였다면 공천 개혁은 2015년의 시대적 화두”라며 “소수 정당과 비주류의 참여를 촉진하는 톱투(Top Two)오픈프라이머리로 공천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헌정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로 주목 받았으나 세월호 정국 속에서 이상돈 비대위원장 영입 문제로 5개월 만에 사퇴했다. “폭풍의 언덕에서 힘들었다”는 그는 당시 ‘땅 짚고 넘어진 자, 땅 짚고 일어나라’는 보조국사 지눌의 법어를 되새기며 묵묵히 견뎌냈다고 한다.

의원실에는 달마대사의 그림도 걸려 있었는데 뜻밖에 인터뷰는 이해인 수녀의 시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는 새해 첫날 페이스북에 이해인 수녀의 시 ‘새해 아침에’를 올린 후 “(이 시의 내용대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고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약속했다. 그는 “20대 후반 MBC 앵커 시절에 수녀님이 ‘사랑은 관심이다’고 한 말을 들은 후부터 수녀님의 시를 좋아했다”며 대장암을 이겨낸 이해인 수녀의 건강을 기원했다.

-1월 22일 여야 혁신위 공동 주최로 ‘오픈프라이머리 토론회’가 열렸다. 여야가 세부 내용을 두고 온도차가 크다.

“나경원 의원이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매우 기초적인 단계다. 내가 제안한 톱투오픈프라이머리는 미국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단점을 보완한 가장 진화된 최첨단 제도다. 정당에 관계없이 예비선거에서 득표수로 1, 2등을 가린 후 결선을 치르는 방식이다. 미국 4개 주에서 실시하는데 소수 정당이나 비주류의 참여가 활발해지는 장점이 있다. 영·호남에선 ‘공천=당선’이라는 고질병이 있다. 톱투오픈프라이머리를 하면 같은 정당 내에서 경쟁할 뿐 아니라 무소속 후보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

-왜 지금 오픈프라이머리인가.

“2012년 친노와 비노 문제로 심각한 공천 갈등을 겪었다. 총선에서 대패할 것이 뻔해 저항의 의미로 당시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친노패권주의가 부활했고, 그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야 모두 기득권을 버리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는 한 내년 4월 총선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여당은 청와대, 야당은 계파정치에서 해방될 것이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나.

“2월에 여야 지도부가 꾸려지는 대로 오픈프라이머리 논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박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법안을 제출했으나 무산됐다. 그는 “당시 여야 정치개혁특위에서 같은 날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는 문제까진 합의했으나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넘어가면서 합의가 파기됐다”며 비화를 들려줬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여성 후보들에게 불리할 텐데.

“여성 정치인은 인맥, 학맥, 사회적 네트워킹이 취약하다. 그런데 오픈프라이머리는 불특정 다수 유권자에게 호소하므로 부지런한 여성들에겐 더욱 유리하다. 여성이라는 신선함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그래도 처음 정치권에 들어온 여성 신인은 가산점을 줄 필요가 있다.”

-여당은 지역구 선거에 출마하는 비례대표 여성 의원도 득표수의 10∼20%를 가산해주는 ‘디딤돌 점수’를 준다. 야당은 완전 신인에게만 가산점을 준다는 얘긴데.

“비례대표 홀짝제는 아주 잘한 제도다. 하지만 비례대표나 전략공천은 기회 균등 면에서 문제가 많다. 특정 인맥이나 계파와 가까워야 가능한 불투명한 진입 통로다. 사실 오픈프라이머리가 유권자와 만날 준비가 안 된 전문직 여성들에겐 단점이 될 수 있다. 전문직 여성은 비례대표로 들어와 정치적 입지를 닦은 후 지역구 출마 수순으로 가야 한다.”

박 의원은 “여성 국회의원이 20%가 안 되는 정치권은 여성들에게 블루 오션”이라며 “여성이 50%가 안 되는 직업군을 노려야 한다. 미래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 첫 법제사법위원장부터 여성 첫 원내대표까지 정계에서 새 길을 열어온 박 의원은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정치에 입문한 후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앞장서온 그는 올해도 일명 ‘이학수법(불법이익환수법)’을 준비하며 ‘불량 재벌’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학수법은 불법행위로 얻은 이득을 국가가 환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강단 있는 여성 정치인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었다. 바로 고2 외아들이다. “BBK 주가 조작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일본에 갔어요. 열 살 때 엄마와 떨어진 아들에게 늘 미안하죠.” 아이가 어렸을 때는 퇴근 후 밤늦게 아이 방에 들어가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박 의원은 “어머니가 해준 기도의 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 여성이 해주는 기도의 힘이 큰 영향력을 끼치더라”며 “그것이 바로 엄마의 힘”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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