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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28일 한국인권재단이 개최한 ‘제주 인권학술회의 2000’은

여성문제가 중심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다른 학술회의들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회의를 마무리하며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은

“인권이 세계적 담론을 형성해 가고 있고, 이중에서도 여성 인권이

핵심으로 떠올라, 그야말로 인권에서도 여성 시대가 오고 있음을 실감

한다”고 코멘트할 정도. 회의 참석자도 1백여 명중 여성이 반인 50여

명. 참가자들은 곽노현 한국방송대 법학과 교수, 권오일 에바다학교 교

사,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박영숙 영국대사관 공보관, 박원순 참여

연대 사무처장, 임태훈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전응휘 피스

네트 사무처장, 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최영애 한국성폭력상담

소 소장,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인권관련 연구자와 현장활동가

로 다양한 분포.

13개 주제중 여성 주제 6개, 다양

이번 회의에서 여성 인권이 부각된 것은 8인으로 이루어진 준비모임에

서 신혜수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김은실 이대 여성학과 교수 등

여성 준비위원 4인이 여성 참가자들에 대한 기회 확대와 더불어 주요

여성 이슈를 매 섹션에 골고루 끼워넣자고 제안했고, 이를 나머지 준

비위원들이 ‘새로운 것은 뭐든지 좋다’란 측면에서 기꺼이 수용했기

때문. 이에 따라 발제에서부터 여성인권과 밀접한 일상의 억압과 인권,

소수자의 인권이 제기됐고, 이후 프로그램에서 여성 평화운동 관점에

서의 인권, 호주제 관련 여성 인권, 학교내 성폭력, 가족 구성에 관한

여성권리, 유교와 여성 인권, 매춘여성의 인권 등 전체 13개 분과에서

6개 분과가 여성 인권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이슈들을 다루었다.

이는 99년 회의 당시 국가권력과 인권이란 대전제 속에 ‘남녀평등’

이란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으로 여성 인권을 다룬 것보다 훨씬 다

양하고, 여성 삶에 밀접히 맞닿아 있다. 특히, 26일 분과토의에선 호주

제·학교내 성폭력·여성의 가족 구성권 등 3개 주요 여성 주제로만

구성돼 있어 남성 참가자들이 필수적으로 참석하도록 배려했다. 이들

토의에 참여한 남성 대부분은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라고 토로하

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여성 관련 주요 분과 토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교와 인권 분과는 지난 연말부터 시도돼 왔던 페미니즘과 유교의

만남이란 연장선상에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이날 발제 ‘여성인권

개념 확장을 위한 유교적 탐색’(이숙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

원)에선 여성 권리와 낙태 문제를 유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란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이는 발제자가 유교문화에서 여성 인

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실례로 남아선호와 여아낙태 현상을 든 데

따른 것. 발제자는 여아 낙태 문제를 과학기술과 그 도덕성, 관련 전문

가의 도덕성 문제로만 볼 수 없듯이 유교 전통의 문제로만도 볼 수 없

고, 유교 전통이 과거엔 모든 행위와 사고의 근거가 됐지만 사실 체계

의 변화에 따라 현재는 ‘가치’로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여성학자들과 운동가들은 첫째 아이일 때와 셋째 아이일 때의 여태아

낙태율이 현저히 차이나는 현실을 지적하는 한편, 여성학자들은 낙태

를 죄악시하는 유교 전통이 그토록 굳건한 한국에서 왜 세계 어떤 국

가보다 여아 낙태율이 높은지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과 해결 모색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페미니즘과 유교를 접목시키려는 시도 자체

가 새로운 여성 억압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으니 신중한 접근 모색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호주제 분과에선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가장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면

서 성차별을 고착 유지시킨다는 데서 폐지 당위성을 들었다. 또한 호

주제는 가족제도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현실 가족공동체와 유리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호주제 폐지 심의 후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나

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할 수도 있으며, 폐지 후 가장 바람직한 대

안으론 1인1적제 편제방식, 기본 가족별 편제방식 등이 제안됐다.

가족 구성에 관한 여성의 권리 분과에서는 가부장적 관점에서 편견을

부추기는 ‘미혼모’ 용어의 문제점을 들어 ‘독신모’ 용어로의 대

체 가능성을 모색하고, 법과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고 문화적 편견이

심한 상태에서 ‘미혼부는 없다’는 부조리한 상황이 논의됐다.

“인권이 최고 가치가 아닌 운동은 위험”

특히 이 ‘독신모의 모성성과 여성성, 그들 자녀들의 현실적 권리’

발제는 미혼모란 편견을 딛고 10개월 간의 투쟁 끝에 딸을 되찾은 진

현숙 씨가 직접 발제를 맡아 참석한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같은 맥

락에서 신경혜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상담소 부소장의 ‘우리 사

회의 한부모’ 발제 역시도 편부모란 용어로 인한 여러 편견 때문에

‘한부모’란 대안 용어가 필요함이 역설됐고, 결국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결손가정’에 대해 법과 제도상의 다양한 지원과 아울러 자존

감의 증진이 절실함이 주장됐다.

이 분과에선 가족관계를 비정치적으로 보면서 ‘가족이라 더욱 더 친

밀할 수 밖에 없다’란 강박감에서 벗어나고, 가족의 문제를 성과 권

력의 관계에서 다시 바라봐야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거란 급진적인 논

의들이 나왔다.

평화운동과 인권 분과에선 여성 평화운동의 일상 속에서의 접목 부분

이 특히 강조됐다. 정유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평

화를 만든다는 것’ 발제에서 소수자의 피해를 가깝게 느끼는 데서 우

러나오는 인권 감수성과 일상에서 구체화된 인권의 문제,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간과 또는 평가절하돼 버리는 여성 인권의 문제를 현

장 경험과 조화시켜 토로했다. 개인보다 민족이 더 중요하고, 인권보다

반미가 더 중요하다는 대전제는 기지촌 여성들을 희생되어도 무방한

민족 성원으로 분리하면서 피해자 구제 노력과 의지를 ‘사소한 것’

으로 돌리고 결국 인종주의 유발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발제자는 인

권을 매 순간 그 어느 것보다 최고의 가치로 두지 않는 운동은 위험하

다는 결론으로 인권 원칙을 다시 강조했다.

‘일상’ ‘차이’ ‘다름’에 집중

회의 마무리로 발표된 결과물 ‘제주 인권문서 2000’에서 ‘일상의

인권’이란 새로운 용어가 대두되고 일상생활에서의 감수성을 바탕으

로 ‘차이’와 ‘다름’을 인정 수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듯이, 이

번 인권학술회의는 인권 문제를 연구자나 활동가 모두 좀 더 가깝게

체감하며 향후 전략을 짤 수 있다는 차원에서 최대 수확을 얻어냈다.

'제주=박이 은경 기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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