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 핸드백 디자이너
“젊은 디자이너들 생산 과정 잘 몰라...불통이 업계 발전 막아”

 

서울 서교동 피노쿤스 매장에서 만난 공재희 대표. ⓒ이세아 기자
서울 서교동 피노쿤스 매장에서 만난 공재희 대표. ⓒ이세아 기자

“가방을 사면 분해해 보는 습관이 있어요. 샤넬 퀼팅백을 사서 뜯어 본 적도 있고요. 내부 보강 구조가 궁금했거든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샤넬백 가격을 고려하면 다소 당혹스러운 발언이다. 하지만 늘 남다른 가방을 연구하는 핸드백 디자이너의 말이라고 하면 납득이 간다. 공재희(50세) 대표는 20여년 동안 핸드백 산업 현장을 지켜 온 베테랑이다.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기 위해 작년부터 대학 강단에도 섰다. 만듦새가 매끈한 그의 가방 가죽 아래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봉제산업 전성기에 뛰어든 길...20여 년간 산전수전 다 겪어

1970~80년대는 한국 의류·봉제 산업의 전성기였다. ‘메이드 인 코리아’ 꼬리표를 단 캐릭터 인형들이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고등학생 때 TV에서 캐릭터 인형 수출로 뜬 여자 사장을 봤어요. 저도 그쪽으로 나가야겠다 싶었죠.” 그는 1986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홍대~합정동 쪽에는 패션 관련 수출회사가 많았다. 학교 근처에서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한 패션업체 사장으로부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부터 패션업체에서 일을 시작했고, 의류와 가방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금강핸드백에 입사했다. 아직 한국에 핸드백 전문 디자이너가 없던 시절이었다. 

“쉽지 않았어요. 당시 성수동에 회사와 샘플 개발 공장이 함께 있었는데, 덕분에 디자인과 생산 현장 모두를 오가면서 배웠어요. 영업 노하우도 없으면서 29살에 OEM 사업에 뛰어들었죠.” '무용담'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그는 시종 담담하고 조용한 말투였다. 일본 시장을 뚫기 위해 온갖 소재를 다 실험해 봤고, 도소매와 해외 전시회 경험도 쌓았다. 산전수전 다 겪다보니 디자인, 생산, 표현 모두 자신이 붙었다. 20년만에 2005년 독립 브랜드 ‘자코몰라’를, 2012년 ‘피노쿤스’를 런칭했다. 

공 대표처럼 디자인과 제조 현장 모두에서 경험을 쌓은 디자이너는 보기 드물다. 그는 최근 디자인과 생산 현장의 괴리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생산 과정을 잘 몰라요. 본 적이 없죠. 비용 때문에 패턴사, 샘플 개발실을 안 두는 회사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디자이너가 공정을 모르면 실제 제작 라인과 소통이 안 돼요.” 이 ‘불통’이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직접 간단한 종이 샘플도 만들어 보여 주고, 패턴도 떠 보고, 소재 선정, 원가 계산도 해봐야 의도대로 좋은 제품이 나오는데... 요새 디자이너들은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을 프린트해서 넘기면 그걸로 끝이더라고요”.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보다 명품 가방 카피에 열중한 국내 업체들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러나 무작정 비판하기보다 한국 시장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새 브랜드 상품이 비슷비슷한 이유가 뭘까요? 지갑을 여는 이들이 정해져 있어서예요. 3~40대 커리어 우먼을 겨냥한 정장 스타일의 가죽 백만 팔리다 보니 그것만 만드는 거죠.” 팔리는 제품만 더 싸게 만들려는 시장의 압박이 결국 더 나은 제품이 나올 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악순환이다.

 

공 대표는 밀란 쿤데라의 글을 좋아하는 독서가인데다,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소지한 ‘요리 매니아’기도 하다. 누구든지 편하게 들릴 수 있는 ‘동네 밥집’을 차리고픈 꿈도 있다. ⓒ이세아 기자
공 대표는 밀란 쿤데라의 글을 좋아하는 독서가인데다,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소지한 ‘요리 매니아’기도 하다. 누구든지 편하게 들릴 수 있는 ‘동네 밥집’을 차리고픈 꿈도 있다. ⓒ이세아 기자

여성이라 힘든 점 많아...현실적인 조언도

요즘 명품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국내 유통량도 ‘짝퉁’도 늘면서 명품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공 대표가 체감하는 ‘대세’는 독특하고 희소가치 있는 중소규모 브랜드다. 이제는 나만의 스토리가 담긴 가방, 가성비가 높은 가방 등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필요하다. 

스토리는 디자이너와 소비자의 만남에서 우러나온다. 공 대표는 ‘의상실’의 귀환을 점쳤다. “저 어릴 때만 해도 흔한 풍경이었어요. 결혼식 때 입을 투피스를 맞추려고 엄마와 재단사, 의상실 디자이너가 몇 번을 모여서 상의했죠.” 오뜨 꾸뛰르(Haute-Couture·맞춤복)에서 나아가 소비자가 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방식이 인기일 거라는 분석이다. “홈쇼핑이 왜 떴을까요? 소비자들은 ‘나 잘났지? 이래도 안 살 거야?’ 마케팅보다 ‘이건 이러면 어떻고, 저건 어때’ 식의 친절한 설명을 더 좋아해요.” 공 대표의 브랜드 가방들도 주문형 생산 방식으로 전환할까 고려중이란다. 

여성 핸드백 디자이너가 현장에 20여년 이상 몸담고 자기 브랜드까지 가진 경우는 많지 않다. 업계 대표 여성 사업가로 떠오른 공 대표지만, 처음부터 야심은 없었다. 일은 좋은데 회사에 못 다니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택한 길이었다. 여자라서 힘든 점이 많았다. “금강핸드백 다니다가 2년 후 결혼했더니 위에서 눈치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프로모션 업체로 옮겼고, 아이를 낳았더니 회사에서 또 불편한 눈치예요. 출산 휴가도 한 달 반만 쓰고 나왔고 일할 계획도 꼼꼼하게 세웠는데...” 이럴 바에는 나가서 내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여기까지 왔다. “너무 길고 힘들었죠. 부럽다고들 하는데, 주변에 사업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려요.” 공 대표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성으로서 일하는 어려움을 잘 알기에, 공 대표는 자사 여성 디자이너들을 최대한 배려하려 노력한다. 품평회나 신규 상품 기획 시즌을 제외하면 야근도 거의 없다. 동시에 워킹맘들 스스로 출근 시간 등 업무 계획을 지키려 노력했으면 한다고 공 대표는 말했다. 본인 일정보다 남편 일정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핸드백 디자이너 지망생을 위한 조언을 청했다. “상담 요청이 들어오면 남편이 뭐 하시는지부터 물어봐요.(웃음) 너무 현실적인가.” 당장 먹고 사는 데 문제없으면 뭐든 시작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니라면 블로그처럼, 취미로 하라고 한다. 공 대표는 결국 ‘나만의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품은 곧 디자이너 자신이에요. 자기 캐릭터를 제품에 녹여내는 ‘내공’을 갖추세요. 충분히 시험해 보고 시장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아요. 소재에 대한 고민, 온라인 시장 조사는 필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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