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영 전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백희영 전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09년 12월 31일은 여성부가 가족과 청소년 업무를 이관받아 ‘여성가족부’로 다시 개편되는 조직 역사상 중요한 날이기도 하지만, 장관의 리더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가족·청소년 업무를 여성부로 이관한다는 논의는 2009년 가을 시작됐다. 당시 가족정책의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백희영 장관이 임명된 배경도 그중 하나였다. 취임하고부터 계속 매달린 일이 이 일이었다. 당시 여성부의 규모는 102명에 불과하고 조직도 1실 2국 체제의 초미니 중앙부서였다. 여성부가 기존의 양성평등 업무만 담당해서는 정부조직법상의 독립 부처로 존속하기가 쉽지 않고, 보건의료, 연금 등 큰 현안들이 많은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가족·청소년 업무가 묻힌다는 주장도 공감을 받은 것 같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9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창립 50주년 기념식 및 제45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가족과 청소년 등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을 여성부에 이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러나 정부 내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청소년과 가족업무 이관은 보건복지가족부와 손쉽게 합의가 됐으나 아동과 보육업무 이관문제는 조정이 쉽지 않았다. 복지부는 아동 보호를 전통적인 복지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여러 차례의 조정과 논의를 거쳐 아동과 보육업무는 복지부에 남는 것으로 됐고, 대신 건강가족기본법상의 아동업무는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어서 정부조직법이 의원 입법 형식(이은재 의원 대표발의)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부처 간에 이미 합의된 법이니 쉽게 통과될 것이라 전망했으나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민주당 의원이 ‘아동·청소년 업무는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라며 아동과 청소년, 가족과 보육업무가 분리되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반대했다. 주장이야 다 맞지만 최적안은 안 되니 대안이 필요한 것이고 우리로서는 청소년정책과 가족정책의 연계 필요성, 가족정책의 대상이 되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정책은 남겨두고 프레임만 가져온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결국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청소년업무는 제외된 채 정부조직법이 수정되어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날 아침 복지부 간부회의에서도 청소년업무는 이관되지 않으니 가족업무 이관만 준비하라고 할 정도로 본회의에서 상임위를 통과한 안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백 장관이 아니었다. 2009년 12월 31일 국회가 종료하는 마지막 날 본회의에 청소년 이관이 포함된 정부조직법 직권상정을 추진한 것이다. 안행위에서 대안으로 올라온 법안과 본회의에 직접 상정된 법안을 수정 의결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백 장관은 국회의장의 정부조직법안 직권상정을 위해 국회에서 거의 살면서 설명하고 또 설득했다. 당시 국회와의 협조업무를 맡고 있는 분들도 “장관님 이제 전화 좀 그만하셔도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때 권익증진국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장관께 물었다. “수정 의결하는 과정에서 안행위의 대안이 통과되면 어떡하죠?” 하고 우려를 표명했더니 “그래도 할 수 없다 괜찮다. 최선을 다했으니 된 거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때 ‘리더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국 표결까지 간 상황에서 우리들이 지지하는 안이 통과돼 오늘의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지게 됐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리더의 능력과 조직원들이 일치단결할 때만 나온다. 2009년 12월 31일은 그것을 보여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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