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던지는 남편의 구조 요청 외면 말아달라…”
쌍용차 노사교섭 시작, ‘굴뚝인’ 이창근 김정욱 티볼리 만드는 날 올까

 

쌍용차 평택 공장 안 70m 굴뚝에서 고공 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의 부인 이자영씨가 지난 16일 오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쌍용차 평택 공장 안 70m 굴뚝에서 고공 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의 부인 이자영씨가 지난 16일 오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정욱, 이창근이 만드는 티볼리를 타고 싶어요.”

16일 오후 찾은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 농성장은 뿌옇게 흐린 날씨에 칼바람이 불어선지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70m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두 해고자는 마치 두 개의 점처럼 보였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굴뚝에 오른 지 35일째다. 동갑내기 남편 이창근씨가 있는 굴뚝을 바라보는 부인 이자영(42·요가 강사)씨의 눈빛은 걱정과 불안, 그리움이 뒤섞여 뭐라 형언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크레인으로 공장 정문을 뚫은 뒤 굴뚝 밑에 댔다 올라가는 계획이었어요. 군사작전과 다를 바 없었죠. 남편이 사고당할까봐 없던 애교를 부리며 말없이 달랬는데 안 되더라고요. 일부러 옆에 가서 누우면 남편이 온갖 짜증을 다 내요. 외아들 주강이도 ‘엄마, 왜 이래?’ 막 이러고, 남편은 ‘나한테 이러고 싶냐?’면서…. 안전하게 굴뚝에 올라갔다는 전화를 새벽에 받고서야 한시름 푹 놓고 잤죠.”

그렇게 시작된 굴뚝 농성이 한 달이 넘으면서 이씨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파업 때처럼 얼굴이 붉으락 붉으락 했다. “제가 요가 하는 사람이다 보니 마음이 알기 전에 몸이 먼저 알더군요. 탈이 난 거죠.” 지난주는 아예 굴뚝에 오지 않았다. 이씨는 “남편에게 제가 파업을 한 것”이라며 “원망의 에너지를 풀 길이 없어 속이 마구 긁혔다”고 했다.

남편은 사흘 전부터 음식을 제공받지 않았다. 신차 ‘티볼리’ 출시일에 맞춰 쌍용차 최대 주주 마힌드라그룹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공장을 방문한 그날부터다. 전투식량으로 버티며 회사 측에 교섭테이블로 나와달라는 압력을 가한 것이다. 이씨는 “지상에 던지는 구조 요청 메시지”라고 말했다. “재작년 말 대한문에서 철수하고 공장 앞으로 옮겨온 후 4년 만에 공장 안 동료들과 접촉이 시작됐어요. 김밥을 나눠주면서 피아를 구분하는 경계가 무너져갔죠.” 그동안 무효 판결을 촉구하며 대법원 앞에서 2000배를 했고 발 닿는 곳마다 3보1배도 했다. 고공농성 역시 “우리의 부당함을 알리려 왔다!”가 아니라 이렇게 몸을 낮추니 우리가 내민 손을 공장 안에서 잡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이씨는 반문했다. “우리는 회사보다 작은 사람들이죠. 작은 사람은 큰 사람한테 달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요? 큰 사람은 주는 게 맞고요.” 노동자로 일하면서 밥 한 끼 값을 벌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공감할 것이다.

 

고공 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왼쪽)과 김정욱 사무국장. 쌍용차 노사가 21일 교섭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지상에 언제 내려올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공 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왼쪽)과 김정욱 사무국장. 쌍용차 노사가 21일 교섭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지상에 언제 내려올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씨의 바람은 실현될까. 취재가 끝난 며칠 후 해고자들과 가족이 내민 손을 회사가 잡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2009년 77일 동안의 공장 점거 파업이 끝난 지 65개월 만인 이달 21일 대화 테이블이 마련된 것이다. 마힌드라 회장이 평택 공장에서 김득중 노조 지부장을 예고 없이 만나 굴뚝 농성,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밝힌 것이 노사 교섭의 신호탄이 됐다.

이날이 오기까지 26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으로 숨졌다. 이혼과 별거 등 숱한 가정 해체도 뒤따랐다. 권지영 와락 대표는 “해고는 한 가정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사회적 살인”이라고 말했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내쫓기면서 겪는 경제적 고통은 기본이다. 남편은 “해고됐다”는 열패감에 빠져 집 바깥으로 안 나가고, 담배도 사다 줘야 할 지경이 된다. 그러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다. 역시 해고자 아내인 권 대표는 “해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가정이 파괴된다”며 “이혼한 경우도 많고 별거만 수년째 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나마 와락이 있어 아내들은 숨 쉴 곳이 생겼다. 고공농성자들에게 보내는 굴뚝 도시락도 이곳에서 준비한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 등 국가공권력 피해자 심리치유 센터인 와락에는 주강이 또래가 많다. 아이들은 형제처럼 지내고, 아내들도 언니동생으로 마음을 나눈다. 6년 전에는 이마저도 없어 엄마들이 아이를 꼭 껴안고 파업 현장에 가야 했다. 이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강이가 응급 대처법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아요. 사람에게 물리적 힘을 가했을 때 어떤 타격을 입는지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요. 무기들도 다 그려낼 정도로 정교하게 상상해요.” 파업 당시 네 살이었던 아이는 곤봉을 찬 전경들이 방패로 바닥을 팍팍 치는 모습을 보면서 컸다. 그 뒤로 널빤지든 막대기든 죄다 집에 주워 왔다. 심지어 장난감 놀이를 한다며 바리케이드를 쌓기도 했다. TV를 통해 특공대가 지붕을 뛰어다니며 ‘삼촌들’을 때리는 모습을 본 뒤로는 특공대를 물리치는 방법을 매일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아이가 평화로운 사람이 되길 바랐던 엄마의 꿈은 멀어져만 갔다. 아이는 맨발로 흙을 밟는 어린이집에 가서도 부츠와 장화를 신고 다녔다. 엄마는 “그냥 가슴이 아팠다. 아이와 헤어지는 게 무서워서 끼고 산 것이 후회스러웠다”고 했다. 아빠의 굴뚝 농성을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남편이 굴뚝에 올라간 그날부터 주강이가 엄청 아팠어요. 막 토하고, 배 아프고, 머리 아프고…. 이유 없이 하루에 10번씩 울고….” 이씨는 “아이는 엄마, 아빠와 연결돼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밀접해지는 관계더라”며 눈물을 훔쳤다.

몸이 많이 망가진 남편은 남한테 부릴 신경질을 가끔 아내에게 낸다. 얼마 전에는 “잘 잤으면 좋겠네”라는 아내의 저녁 인사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그짓 그만 때려치우고 당장 내려와!”라고 들린다는 것이다. 주강이 생일(1월 21일)에도 남편은 지상에 내려오지 못했다. ‘굴뚝인’ 이창근의 아내는 “이제는 남편과 같은 곳을 보고 싶다.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