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정교사 아닌 시간제 교사가 아이 돌보는 보육시설 많아”
원장보다 담임교사 면담 필수… 아동학대 징후 놓치지 말아야

 

서울 동대문구가 아동학대 및 성폭력 예방을 위해 21일 동대문구청 다목적강당에서 연 ‘2015년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사 소양교육’에 참석한 교사들이 아동학대 예방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동대문구가 아동학대 및 성폭력 예방을 위해 21일 동대문구청 다목적강당에서 연 ‘2015년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사 소양교육’에 참석한 교사들이 아동학대 예방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 ‘보육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네 살배기 아이에게 ‘핵 펀치’를 가한 송도국제도시 어린이집뿐 아니라 유치원, 학원 등 교육시설에서 잇따라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강원도 원주의 무술관에서 7살 남자아이가 목검으로 무려 100대를 맞고 병원에 실려 가는 일까지 생겨났다. 아이들의 보육이나 신체 능력, 학습 능력을 높이기 위해 보내는 교육시설이 정작 ‘학대의 온상’이 된 현실에 부모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막연히 공포에 빠지지 말고 교육시설 아동학대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적 감시망이 소홀한 상태이므로 무작정 정부만 믿지 말고 불량교사를 퇴출하는 데 엄마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엄마들의 1인 시위와 서명운동, 항의 집회 등 집단행동이 이어진 것은 ‘엄마가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을 쓴 사회복지법인 큰하늘어린이집 이은경 대표는 “어린이집 업무가 굉장히 힘들어 교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월급도 적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며 “상당수 보육시설이 12시간 보육 가능한 정교사는 보육통합정보시스템에 등록해 놓고 4시간, 6시간짜리 시간제 교사를 쓴다. 실제로 아이는 시간제 교사가 보육하기 때문에 엄마들이 아이의 담임교사가 누군지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교사는 건강검진도 받고 성범죄 여부도 검증받는 데 반해 시간제 교사는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엄마들이 교실 입구에 걸린 담임교사 사진과 실제 내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고, 보육시설에 교사 자격증과 인적사항을 공개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라는 것이다.

명의를 대여해 보육교사 명단에 허위로 등록한 뒤 보조금을 부당 수령하는 사례는 심심찮게 적발되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목포의 한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서울 성북구에 사는 동생을 보육교사로 등록하고 동생 명의로 급여통장까지 개설한 뒤 1년4개월분의 인건비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2300만원을 받아챙겼다. 심지어 담양의 한 보육시설은 교도소에 수감중인 사람을 보육교사를 채용해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358만원을 부정수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자격자가 다른 사람의 자격을 이용해 어린이집에 취업하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황수철 변호사는 “보육시설이 국가의 예산을 받는데도 지금은 별다른 견제 장치나 감시 없이 원장이 단독으로 운영하는 체제”라며 “초등학교 운영위원회처럼 부모들이 어린이집 운영에 관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보육진흥원이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시 인성과 자질을 검증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래야 불량교사들을 어린이집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의 태도 변화도 절실히 요구된다. 보통 어린이집 원장들이 아이의 등·하교 때 현관 입구에서 부모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엄마들이 원장을 불편하게 할까봐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대표는 “입학할 때 부모들이 보통 원장만 면담하는데 담임교사 면담을 반드시 해야 한다”며 “그래야 담임교사의 성향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주눅 들지 말고 ‘내 아이는 내가 보호한다’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나서야 아이가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세 아이의 엄마인 서보경씨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처럼 부모가 어린이집에 직접 찾아가 급식 배식을 하거나 당번을 정해 청소를 하면 교사와 부모 간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동학대의 징후를 미리 파악하려면 평소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상담소를 찾아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이호균 아동행복포럼 고문은 “아이가 학대를 당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짜증을 많이 내거나 갑자기 소변을 지리는 등 아동학대 징후를 보인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하지 않던 폭력적 행동을 보일 때는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학대받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지나치게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전문가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대로 상담을 하고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고문은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줘서 보호받고, 지지받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체벌을 가장 효과적인 훈육법으로 여기는 문화가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훈육성 체벌, 훈육성 애정 표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벌은 폭력이기 때문에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빈도도 많아진다.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해 문제 행동을 고치겠다는 인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 고문은 “선진국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가 아동학대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벌금형뿐 아니라 보육교사 자격정지를 시킬 만큼 강력하게 대응한다”고 전했다. 선진국은 보육시설에서 교사 한 명이 아이를 외진 방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조차 내규로 금지할 만큼 아동 보호 지침이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보육교사가 아동학대 가해자일 때도 강력하게 형사 처벌한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외국은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신고를 당연시하는 문화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신고를 고발로 여겨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착한 신고’가 활성화돼야 한다. 특히 정부 정책이 실효성이 있어야지, 지금 같은 사후약방문식 대책은 아동학대를 뿌리뽑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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