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물끼리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 도래
여성 경제활동 늘면서 가사노동 형태도 변화 중
가사·육아 관련 앱 개발 ‘젠더 렌즈’로 살펴야

 

여러 물건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여성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가져다 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LG전자의 휘센 듀얼 에어컨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원격으로 제어하는 모습.
여러 물건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여성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가져다 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LG전자의 '휘센 듀얼 에어컨'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원격으로 제어하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1월 15일 구입한 두부의 유통기한이 임박했습니다. 오늘 저녁식사 메뉴는 두부찌개 어떠세요? 찌개에 넣을 양파와 파는 1월 25일 현재 신도림역 A마트가 가장 저렴합니다. 주문할까요?” 집에 있는 냉장고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산 두부가 유통기한이 다가왔다는 알람이다. A씨는 바로 “양파와 파 주문해줘”라고 냉장고에 메시지를 보낸다.

이 같은 상황은 SF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냉장고뿐 아니라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과도 수다 떨 듯 대화하는 시대가 온다. 곧 다가올 ‘사물 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시대는 상상했던 일들을 일상으로 만든다. 사물인터넷이란, 우리 주위의 여러 물건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가리킨다. 지금껏 사람이 정보를 주고 사물이 받기만 했다면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사람의 개입 없이 사물끼리 정보를 교류하면서 사람들에게 좀 더 편리한 삶을 제공하게 된다. 손목에 찬 스마트시계가 내 신체 리듬에 맞춰 에어컨을 작동해 실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세탁기가 날씨에 따라, 전기료가 가장 저렴한 시간대에 맞춰 알아서 세탁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5 국제가전박람회(CES) 기조연설자로 섰던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사물인터넷이 자리 잡은 세상에선 기기가 더 이상 사람에 의해 실행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사람을 돕고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물인터넷이라는 말은 낯설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 삶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고속도로를 통행할 때 사용되는 하이패스와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몇 번 버스가 도착할지 미리 알려주는 알림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성범죄자의 위치를 관리 기관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전자발찌도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예다.

사물인터넷 중 가장 먼저 확산될 분야로 ‘스마트홈’이 꼽힌다. 스마트홈은 가정 내 각종 정보기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인간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 주거 환경을 뜻한다. 지금까지 등장한 가전제품이 가사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면 사물인터넷 시대의 가전제품은 집안일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주부가 할 일을 대신해주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부의 ‘잃어버린 2시간’을 돌려주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기 수원의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SIM)에서 관람객들이 스마트홈 시스템을 체험하고 있다. ⓒ삼성전자
경기 수원의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SIM)에서 관람객들이 스마트홈 시스템을 체험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처럼 사물인터넷은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키면서 삶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렇다면 사물인터넷은 여성들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을까. 과거에 ‘부엌혁명’으로 불렸던 세탁기와 냉장고의 등장은 실질적인 가사노동 시간 감소로 이어지진 못했다. 미국의 기술사학자 루스 카원은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주부의 가사노동 총량을 줄이지 않고 단지 노동 형태만 바꿨다”고 했다. 최첨단 세탁기가 등장했어도 빨래를 널고 개고 다림질하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기 때문이다. 최근 등장한 로봇청소기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단순히 먼지만 제거하고, 문턱도 넘지 못해 몇 시간씩 로봇청소기를 돌리고도 또다시 물걸레로 청소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과학기술이 가사노동의 육체적 부담을 덜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함께 가사노동의 형태도 바뀌고 있으며, 여성들의 모바일 접근성도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점은 사물인터넷을 통한 가사노동의 혁신도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실제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이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윤정로 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는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사물인터넷을 ‘젠더 렌즈’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사물인터넷이 가사노동 분담으로 이어지려면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 변화도 동반돼야 한다”며 “특히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관련 분야 연구개발에 여성들의 참여가 더욱 늘어나 여성의 눈으로 사물인터넷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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