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만능 해결책 아냐” 행복, 교육·심리분야 다양한 변주
“‘남’과 ‘내일’ 위해 ‘나’와 ‘오늘’ 희생 말아야 자존감 커져”

 

“‘남’과 ‘내일’을 위해 ‘나’와 ‘오늘’을 인내하고 희생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불행의 속도를 늦추는 길이요, 나아가 불행에 당당히 맞서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자존감은 커지고 단단해질 것입니다. 바로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행복은 가능한가』 193~194쪽)

요즘 출판가는 행복서가 대세다. 지난해 12월부터 채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30권 넘게 ‘행복’을 키워드로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스펙 8종을 쌓아도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부터 경제난에 노후 준비까지 해야 하는 중장년층까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참 팍팍하다. 역설적으로 행복서가 뜬 이유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긍정심리학 분야에서 나온 행복서가 꾸준히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며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또 다른 방증 같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서들이 뜨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이 어떻든 내 자존감 지켜야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신작 『행복은 가능한가(소나무)에서 ‘낡아서 좋지 않은 것만 남은 유교’와 ‘서양의 잘못된 마음가짐’을 각각 ‘폐유’와 ‘폐서’라고 이름 짓곤 ‘폐유’와 ‘폐서’가 뒤범벅된 기형적인 문화에 꽁꽁 묶여 사는 우리에게 행복은 가능한지 매섭게 묻는다. 최 교수는 “남이 어떻든 내 자존감을 지키겠다는 고집스러움을 잃지 않는 사람들 모두가 ‘문화 영웅’”이라며 “자기 안에 꿈틀대는 모난 자존감이 튀어나올 때 행복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자는 대형 웨딩컨설팅 업체의 웨딩플래너들이 부추기는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가 행복한 결혼식을 만들어 줄 리 없다고 단언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따라하는 결혼식은 ‘폐유’와 ‘폐서’의 불행한 동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불행은 문화적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통과의례가 철저히 무너졌다는 얘기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짝을 만나고, 자식을 낳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마다 진정한 기쁨과 슬픔을 느끼기보다 장삿속 난장판을 헤매니 불행의 가속도만 붙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요즘 출판가는 행복서가 대세다. 지난해 12월부터 채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30권 넘게 ‘행복’을 키워드로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요즘 출판가는 행복서가 대세다. 지난해 12월부터 채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30권 넘게 ‘행복’을 키워드로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교육서에도 행복 바람이 거세다. 이는 세월호 침몰 사건 여파의 영향이기도 하다. 문용린 전 서울시교육감은 『문용린의 행복교육』(리더스북)에서 고진감래형 교육이 미치는 폐해가 크다고 강조한다. 그는 “성공을 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행복교육이란 아이 스스로 자신의 꿈과 끼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을 세워 열심히 노력하며, 그 가운데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는 교육을 말한다.

5포 세대, 왜 행복을 말하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실직과 취업난에서 고달픈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스펙’ 쌓기 등 자기계발에 나섰다. 초기에는 재테크와 자기 능력을 쌓는 노하우를 담은 책이 인기를 끌었고 뒤이어 ‘셀프 힐링’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출판시장을 석권했다. 두 권을 합쳐 500만 권 가까이 팔릴 만큼 대중은 ‘셀프 힐링(자기치유)’에 빠져들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도 모자라 5포 세대(인간관계, 내집 마련 등도 포기)라는 용어마저 나왔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 패러다임으로 바뀌면서 고만고만한 생활을 이어가던 사람들은 행복을 자기만의 기준으로 찾게 됐다. ‘작은 사치’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큰 소비보다 한 단계만 더 레벨업 되길 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곽진언, 이진아처럼 붕어빵처럼 변별력 없던 걸그룹 틈에서 스타로 떠오른 것도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세태를 보여준다.

한씨는 “IMF 이후 2000년대 들어서까지 끊임없이 성공을 강조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쳤다. 지금은 사람들이 주관적인 행복에 대한 정의를 찾아 나섰다”고 진단했다. “성공하면 행복할 거고,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야”에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나만의 행복 기준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대스타에서 소길댁으로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가수 이효리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초 나온 『미니멀리스트』(이상)는 물건을 최소화하고 정신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좋은 차, 큰 집과 많은 물건을 소유한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가진 것을 최소화하고 빚을 청산한다. 심리학에선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 같은 책도 나왔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사랑받고 환영받으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의 기준 잡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행복서가 왜 출판시장에서 뜬 걸까. 장씨는 “경제난이 고착화되면서 물질만능주의와 경쟁 일변도의 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어진 것이 주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스탠퍼드대나 하버드대를 졸업해도 국내에서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만큼 취업난이 극심하다. 일등도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행복서가 강세를 보인 것은 경쟁이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행복서가 반짝 뜬 것이 아니라 출판시장의 큰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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