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JPG

!26-1.JPG

학교가 새학기를 시작할 때다. 지난해 ‘학교붕괴’라는 흉흉한 교육

현실을 목격한 후 새학기를 맞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때일수록 학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교육개혁을 벼르는 단체가 있

다. 올해로 창립 11년째를 맞는‘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이하 참교

육학부모회)’. 80년대 후반 사회 전반의 민주화 물결 속에서 교육 민

주화를 외치며 교사들이 ‘전교조’를 결성할 즈음, 학부모들도 “교

육이 이대로는 안된다”며 뜻을 모아 89년 9월 국내 최초 학부모운동

단체를 창립했다.

학부모회 사령탑은 올해 신임회장이 된 윤지희 씨(40). 윤지희 회장은

“과거 학부모조직이라고 하면‘육성회’가 고작이었고, 그것도 명목

상 참여에 그치거나 내 아이만을 위한 ‘치맛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면,‘참교육학부모회’를 통해 비로소 학부모들이 교육운동의 주체로

제자리를 찾고 교육민주화에 동참해 왔다”고 그 의의를 설명한다.

26개 지부 5천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참교육학부모회’는 명

망가나 교육전문가보다는 이름없는 보통 학부모들이 주축이라고 윤 회

장은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대부분은 여성인 엄마들이다. 아직까지 주

로 남성이 생계 부양자일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한계 때문에 육아

와 교육을 책임지는 여성들이 학부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수밖

에 없다고. ‘참교육학부모회’창립 당시 여성단체 내에서 교육을 연

구하던 여성들이 많이 동참했고,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회원단

체로도 참여하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의 학부모 운동은 여성 운

동의 지평을 교육 부문으로까지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평범한 학부모들 모여

최초 학부모 운동단체 창립

지금까지 ‘참교육학부모회’는 교육 현안에 대한 정책대응, 학부모

대상 교육, 학부모 상담실 운영, 어린이·청소년 문화사업 등을 해 왔

다. 90년‘돈봉투 없애기운동’을 추진해 오랜 병폐였던 촌지 문제를

처음으로 사회공론화했고, 95년 공청회를 통해 수동적인 학부모 위치

에서 능동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학교운

영위원회’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또 97년 ‘체벌 반대운동’을 펼

쳐 통제 대상으로만 여겼던 학생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참교육학부모회’의 학부모 운동은 교육행정가, 학자들 중심의 교육

정책 입안 과정에서 학부모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올해 ‘참교육학부모회’의 주요사업은‘희망의 학교 만들기’다. 학

교붕괴 현상으로 인해 학교를 실제로 그만두거나, 학교에서 마음이 떠

나 있는 학생들이 다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운

동이다.

“우선 학생이 주인 되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학

교규칙이나 선도규정을 학생들이 참여해 직접 만들고 학생자치단체를

활성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개정운

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사회에서는 지식기반 사회가 도래했다며 아이들의 창의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길러줄 학교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실정이에요. 전근

대적 시설과 비좁은 교실, 영하 3도 이하일 때만 난방시설을 가동하는,

사회 어느 곳보다 열악한 환경에 학생들이 방치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교육재정 확보를 강하게 요구할 방침입니다.”

지난해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교육환경개선과 과밀학급해소를 위

한 교육재정 GNP 6% 확보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지만, 그는 6%라

는 수치보다 기본 시설이 확보되도록 하는 현실적인 개선이 더 중요하

다고 말한다.

학교에선 ‘별난’ 엄마 집에선 ‘트인’ 엄마

윤지희 회장은 학부모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진 전업주부였다.

그가 학부모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첫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직면

하게 된 촌지 문제 때문이었다. 평소 소신대로 촌지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주위 학부모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갈등을 겪게 됐다. 물

론 당시에는 촌지를 주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런 소신을 10

년, 12년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외로이 혼자서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

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학부모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참교육학부

모회’였다. 단체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고 활동에 참여하면서 5-6년

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부장과 사무처장, 부회장 등을 거

쳐 올해 회장직을 맡으며 전문운동가로 성장했다.

그는 대학졸업 후 줄곧 전업주부로 살아 왔지만, 나름대로 주관이 뚜

렷한 ‘의식 있는’ 주부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어린이도서

연구회’지부활동과‘동화 읽는 어른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어린이

독서문화운동을 폈고, ‘한국여성민우회’ 동북지부에서 여성학을 공

부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등 생활 속에서 꾸준히 교육운동, 여성운동을

실천해 온 사람이다.

그의 가족은 회사원인 남편과 중2,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두 딸

등 네 식구다. 큰딸과 둘째딸의 초등학교에서 4년간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별난’엄마로 찍혔다. 45년

간 교직생활을 했다는 학교장이 “이제까지 처음 겪어본 학부모”라고

고개를 내저을 정도. 수년간 학교에서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여 왔던

관행들에 ‘처음’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매년 학생회

장에 선출된 학생과 동요부르기 교내대회에서 1등을 한 학생은 교사들

에게 소위 ‘한턱’내야 했다. 그는 이런 불필요하고 부당한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감히’ 요구한 것. 이를 비롯해 그는 학교의 문제점

들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등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서의 몫을

톡톡히 했다.

그는 집안에서도 여느 엄마와 다르다. 아이를 중학교에 진학시킬 때,

다른 학부모들이 영어 학습을 미리 시켜야 한다며 난리치는 동안 겨우

알파벳을 익혀서 보냈다. 그 덕분에 영어 수업 첫 시간 딸애가 받은

충격은 너무 컸다고. 요즘도 오히려 그는 아이들에게 학원 가지 말라

고 하고 거꾸로 아이들은 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그도 솔직히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성적이 안 좋으면 속상하다. 하지

만 그뿐이다. “성적이 400명 중 80등이라고, 아이의 인격도 80등인 건

아니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활동 때문에 바빠 집에서는 아이들을 오히려 방치(?)하는 편.

그래서 남편이 “참교육 엄마는 집에선 ‘헌교육’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엄마처럼 잔정은 못 주더라도 아이들의 의

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트인’ 엄마다. 평소 숙제나 공부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하도록 버릇을 들였다. 또 딸애가 만화책 보기를 좋아하는

데 다른 부모들처럼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집 아이들이 그의 집

에 만화책을 갖다 놓고 읽을 정도다.

“예를 들어 방과후 컴퓨터 게임과 채팅, 만화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

내는 큰딸에게 강압적으로 못하게 하기보다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차

근차근 얘기를 해요. 중독되면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을 해 주고 스스

로 자제하도록 기다리죠. 공부도 무조건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는 생

각보다 장래 직업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도록 얘기해 줘요.”

그는 아이들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

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학생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교육

풍토가 돼야 해요. 학부모 입장에서 교육개혁의 핵심은 학교 민주화라

고 생각해요. 그런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 운동을 할 거

예요. 존중 받지 못하는 아이가 성장해서 만든 사회는 폭력적인 사회

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처럼 평범하지만 소신 있는 엄마들이 함께 나선다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 문제도 머지 않아 해결될 것이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윤지희 회장 약력'

1991-95년 어린이독서문화운동

1993-95년 ‘한국여성민우회’서울 동북부지부 활동

1995-96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서울동북부

지부장

1996-98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사무처장

1999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부회장

현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회장,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위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