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성들 기대 컸던 박보영 대법관, ‘성폭력 재판 걸림돌’에 선정
[단독] 여성들 기대 컸던 박보영 대법관, ‘성폭력 재판 걸림돌’에 선정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5.01.22 16:11
  • 수정 2018-02-05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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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성폭력 수사·재판 디딤돌·걸림돌’ 공개
연예기획사 대표 성폭력 사건 1, 2심 재판부는 ‘디딤돌’로

 

박보영 신임 대법관이 2012년 1월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보영 신임 대법관이 2012년 1월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연예기획사 대표 A씨(당시 42세)는 자신보다 27세 어린 15세 B양에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해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다. 거듭된 성폭력으로 B양이 임신하자 연예기획사 대표는 가출을 권유했고 둘은 A씨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하지만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는 대법원에서 연인관계임을 인정받아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성폭력 가해자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제3부 민일영 대법관·박보영 대법관·김신 대법관·권순일 대법관이 17일 성폭력 재판의 ‘걸림돌’로 선정됐다.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미순 상임대표는 “이 판결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더 철저히 길들이고 피해를 지속시켜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면해주겠다는 주문과 같다”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판결로 대법원 제3부는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와 달리 1, 2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 김기영 재판장, 오흥록 판사, 류영재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제12형사부 민유숙 재판장, 박해빈 판사, 심활섭 판사는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성인권 보장에 기여한 공로로‘디딤돌’에 선정됐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04년부터 매년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거나 피해생존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2차 피해를 일으킨 사례를 발굴해 디딤돌과 걸림돌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 선정식은 20일 낮 12시 서울여성프라자 1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심사위원장인 강지원 변호사는 “1, 2심 재판부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보여줬다. 수사재판과정에서 난무하는 가해자의 주장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르게 재해석해 판결을 내렸다”며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지속적인 피해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양가감정을 제대로 파악해 피해자가 겪은 범죄 사실과 분리해 처분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이들과 함께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인권을 고려한 판결을 내린 부산지방검찰청 유남경 검사, 전주지방검찰청 김윤용 검사,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변성환 재판장·유철희 판사·박미영 판사가 각각 ‘디딤돌’로 선정됐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보통 사법부는 피해자의 지적 능력이나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피해 내용에 대해 일관성 있고 논리적인 진술을 하도록 요구한다. 특히 피해 일시를 정확히 말하도록 요구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 비판을 사고 있다. 이번에 디딤돌로 선정된 수사검사와 공판검사, 1심 재판부는 피해 일시를 구체화하지 않았는데도 피해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재판을 진행해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갖춰야 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 공로로 ‘디딤돌’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친부에게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고정된 피해자상을 강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헤아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1형사부 함석천 재판장·윤준석 판사·류희현 판사도 ‘디딤돌’에 뽑혔다.

특히 함 재판장은 진술을 위해 법정에 선 피해자에게 “어떤 괴물이나 야생동물이 덮쳐오면 그땐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본인 잘못이 아니다. 수치심을 갖지 말고, 죄책감을 갖지 말고 살기 바란다”고 격려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 여기에 나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검사 공무원들도 모두 함께 있다. 고소를 결심한 것이 본인뿐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분명 거기에 기여했다. 힘들었을텐데 증언해줘서 고맙다”는 따뜻한 말로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고단한 재판과정에서 재판부의 이러한 행동은 피해자의 마음을 울리는 진심으로 남았고, 높은 인권감수성을 가진 사법기관으로 변화할 희망을 엿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제28사단 보통군사법원 한진욱 재판장·이주형 군판사·김진성 군판사, 육군특전사헌병대 이상국 수사관, 구미경찰서 형사과 류충상 형사, 전주 덕진경찰서 성폭력전담팀 양해원 경사도 ‘성폭력 수사‧재판의 디딤돌’로 각각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반면 노 소령 성추행 사건에서 성추행, 심한 질책, 모욕적인 언사, 가혹행위 등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사유를 넣어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 한재성 재판장·김민경 군판사·김애령 군판사는 성폭력 재판의 ‘걸림돌’에 선정되는 망신을 당했다. 또 같은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가해자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이 정당하다고 옹호한 국방부 브리핑의 책임자인 육군본부 김흥석 법무실장도 역시 ‘걸림돌’에 뽑혔다. 심사위원인 황지영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는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육군 법무병과 수장의 지위를 망각했을 뿐 아니라 항소심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남겨 군대문화 개선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강제추행치상죄로 기소돼 원심에서 집행유예, 항소심에서 징역을 선고받은 가해자인 참모장(대령)을 무죄 선고해 파기환송한 대법원 제1부 김창석 대법관·양창수 대법관·박병대 대법관·고영한 대법관도 ‘걸림돌’에 선정됐다. 결국 가해자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 제1부는 피해자의 진술만을 지나치게 문제 삼아 피해자의 신빙성을 부정한 반면 가해자의 답변만을 들어 뚜렷한 근거 없이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등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줘 군대내 성폭력 근절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3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피해자에게 정확한 공소사실 입증을 요구한 대전지방법원 제1형사부 김용덕 재판장‧고진흥 판사‧임한아 판사, 병장인 가해자가 일병을 성추행한 사건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한 공군제5공중기동비행단 보통군사법원 한승훈 재판장‧송가준 군판사‧엄현재 군판사도 각각 ‘걸림돌’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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