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부의 권한은 봉사” 교황 말씀 부부 관계에서 실천
“평생 강요하지 말고 상대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부부싸움 안 해”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김광태(왼쪽)·변주선 부부. 두 사람은 다르면서 닮았다. 성향은 달라도 둘 다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김광태(왼쪽)·변주선 부부. 두 사람은 다르면서 닮았다. 성향은 달라도 둘 다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그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관객 수가 500만 명에 육박하고 부부애를 다룬 연극이 연일 매진 세례를 기록하고 있다. 이혼이 일상화되면서 가족 관계가 뿌리째 흔들리는 세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부부 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더니 와르르 무너져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사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썸’이 대세인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은 결혼도, 연애도, 출산도 포기한다.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갑갑해지는 세태다.

지난 연말 잔잔한 화제를 낳았던 금혼식의 주인공인 김광태(78‧대림성모병원 이사장) 국제병원연맹 회장-변주선(75) 한국아동단체협의회 회장 부부를 만났다. 의료계에 자리잡은 자녀 셋이 ‘호스트’가 된 거야 자식농사 잘 지은 집안에서 당연하다지만 340명의 손님 앞에서 맹세한 노부부의 서약은 평범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름대로 모든 일에 참 주선을 잘해요. 당신은 나의 가장 훌륭한 멘토예요… 프란체스코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진정한 부부의 권한은 봉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남편) “당신은 결혼이 시집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발전하려는 두 젊은이가 함께 사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어요. 우리는 책상 두 개를 놓은 방 하나에서 시작했습니다…”(아내)

 

책상 두 개 놓고 단칸방서 시작한 신혼

강추위가 한풀 꺾인 12일 오전,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성북동 주택의 거실에서 마주한 노부부는 지난해 한국을 다녀간 프란체스코 교황 이야기를 꺼냈다. “국제병원연맹 회장직에 오른 후 염수정 추기경님께 인사드리러 갔어요.(부부는 가톨릭 신자다) 교황님의 어록이 담긴 책을 선물로 주시더군요. 어록 중에 ‘진정한 부부의 권한은 봉사’라는 말이 있더군요.” 김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봉사는 권리로 의무보다 강한 개념이죠.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봉사도 권리입니다. 내가 발목 잡혀서 하는 의무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의미죠.”

변 회장이 평생 봉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강조하지 않고 더 큰 차원의 롤을 남편의 권한으로 아내에게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부부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아내가 말할 때, 남편이 말할 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었다. 두 손을 맞잡듯 눈빛이 부드러웠다.

취재를 하며 김 회장이 건넨 명함을 유심히 봤다. 부부 사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애처가라 소문났다더니….’ 기자의 말을 듣더니 그는 “로터리 활동을 하는 이들은 다 이런 명함을 쓴다”며 파안대소했다. 부부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다.

노부부의 50년 결혼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봉사’다. 남편은 외과 의사, 아내는 교육자라는 직업을 갖고 봉사했고 그 직업을 뛰어넘어 로터리와 걸스카우트 봉사를 통해 선을 이뤘다. 남편은 국제로터리 이사, 아내는 세계걸스카우트 아태지역위원회 의장과 세계이사를 지냈다. 김 회장은 “사람은 꿈이 없으면 죽는다. 봉사는 무한대이므로 무한한 꿈을 가질 수 있다. 일평생 도전할 꿈을 줬다”고 말했다.

변 회장은 “사실 봉사를 하게 된 건 남편 때문”이라며 뜻밖의 말을 했다. “남편은 병원이 바쁘다고 내가 여기에 매여 인생을 끝내는 것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내 길을 찾기 위해 전 세계 소녀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걸스카우트 활동을 시작했죠.” 노부부의 DNA가 이제 자녀에게 심어져 큰딸 상임(구로다나병원 원장)씨도 현재 걸스카우트 국제분과위원장이자 구로소방서 여성의용대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남편은 100베드의 병원을 300베드로 키우는데 4, 5년을 기다렸다. 아내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손을 맞잡은 노부부의 모습이 따뜻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편은 100베드의 병원을 300베드로 키우는데 4, 5년을 기다렸다. 아내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손을 맞잡은 노부부의 모습이 따뜻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부부는 신혼 때부터 서로 구속할 생각은 꿈도 안 꿨다. 20대의 선남선녀는 달력에 ‘오늘의 독서 시간 2시간’이라고 매일 체크하고 월말 통계를 내 서로에게 보고했다.

유명 번역가인 고 장왕록 교수의 애제자였던 변 회장은 스승의 추천으로 미국 펄벅재단에 갈 예정이었다. “3월 말 친척 중매로 선을 보고 나니 ‘이 남자라면 결혼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겠구나’라는 판단이 들더군요. 저는 남녀공학만 나와서 주변에 가깝게 지내던 남자 친구들이 여럿 있었어요. 또래만 보다 연상을 만났는데 서로 마음이 통했지요.”

그래도 남자는 애간장이 탔다. 다섯 번 만난 후 프러포즈를 했지만 ‘오케이’ 사인이 안 나서다. 외과의답게 연인의 감정을 분석했다. ‘나를 좋아하는 게 100%인데 왜 대답을 안 할까. 다른 남자가 있는 거 아냐?’ 그래서 다시 이해를 시키고픈 마음에 긴 시간을 이야기했다. 여자가 한마디했다. “왜 복잡하게 얘기하나요? ‘사랑해요’ 한마디면 끝날 일인데….”

“아내의 지식과 경험이 남편 변화”

변 회장은 6남매의 장녀로 당시 사업하던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의 학부모 역할을 했다. 김 회장은 9남매의 일곱째로 대가족 틈에서 살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날 때마다 손편지를 보내니 따뜻한 정에 푹 빠졌을 것”이라며 아내는 농담을 했다. “저 역시 친정의 사업이 번성해서 부모님과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어요. 나는 선생 일을 하고, 이 양반은 군의관을 하면서 오순도순 살 것 같았죠.”

김 회장은 “아내의 지식과 경험은 지혜가 되어 남편을 변화시킨다”며 “씨앗을 잘 뿌려 서로를 가꿔주자는 게 우리의 결혼 약속이었다. 오늘 변 박사가 훌륭하게 됐으니 김광태라는 이름을 김주선으로 바꿔야 할 성싶다”며 웃었다.

변 회장은 “내가 원하던 대로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20대 때 일찍 붙잡혀서 결혼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지난 50년을 보면 여성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를 뒷받침해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잘 선택한 결혼이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블러드 도너(blood donor·헌혈 기부자) 매칭이 잘 됐다”고 했다. 혈액형이 맞지 않으면 수혈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혈액형은 맞지만 다른 사람의 혈액이므로 약간의 저항은 있을 수 있다. 부부가 수십 년 살다 보면 티격태격 할 일이 생긴다. 그래도 서로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부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옆에서 말을 듣던 김 회장은 “아내는 평생 강요하지 않고 ‘해도 될까요’라며 의사를 타진했다”고 화답했다. “부부는 청유형으로 서로에게 물어야 해요. 그래야 싸움이 없어요. 큰일일수록 직설적으로 강요하지 말아야 서로 이해하고 따라가기 좋아요.”

노부부 역시 성향은 다르다. 변 회장은 사범대 영어과 출신으로 감성적인 사람이다. 김 회장은 이성적이다. 보름 되면 달이 뜨고 순리대로 달이 진다는 식이다. 아내는 아침에 눈을 뜨면 클래식을 들어야 행복하다. 그런데 남편은 오케스트라 공연 도중 꾸벅꾸벅 졸아도 아내를 이해하려고 함께 갔다. 또 아내가 허락한 뒤에야 병원 규모를 늘렸다. 100베드에서 300베드로 늘리는데 4, 5년이 걸렸다. 그래도 아내가 받아들일 때까지 끝없이 설득했다.

아내는 청유형… 남편은 99% 져주고

40여 년간 병원 경영을 함께 해온 노부부는 요즘도 하루 한 시간 이상 대화를 이어간다. 대화가 사라진 가정은 스위트홈이 아니라 그냥 하우스다. “부부란 서로의 개성과 성격대로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관계입니다. 타고난 달란트가 빛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줘야죠. 핵심은 서로를 건들지 않는 겁니다. 나무는 햇볕 아래 그냥 두면 잘 크잖아요? 방해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거죠. 다만 주변 환경은 좋게 유지해줘야죠.” 그는 “이성적인 내 스타일대로 아내를 끌어당겨 봤지만 0.1%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한편으로는 내 성격을 바꾸지 못해 아쉽다. 지혜가 모자랐던 탓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상대방의 감성을 끌어안아 동화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경제적 곤란을 겪으면 가족은 멀어진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지위나 물질에 인생의 전부를 거는 태도가 옳은 것일까. 돈 못 버는 가장은 아무 소용없는 걸까. 가족이 함께 자문해야 할 때다. 김 회장은 “패밀리 밸류(Family Value)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자신의 철학을 전했다. “세상에서 망하지 않고 가장 오래된 기업이 가족입니다. 패밀리 비즈니스는 수천 년 이어왔지요. 그런데 요즘 가족 관계가 더 어려워졌어요. 기본인 가족이 망가지면 사회가 망해요. 가족의 가치가 지켜질 때 지역사회의 평화, 세계의 평화가 옵니다.”

워킹맘인 변 회장은 분초를 다투는 바쁜 생활에서 가족을 어떻게 챙겼을까. ‘도시락 편지’가 답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손편지로 전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도 제게 늘 빚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원 웨이’(one way),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며 되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내가 준 만큼 보상을 바란다면 서운해져요. 그래서 전 세계에 마음이 닿는 친구가 많아요. 저는 항상 부자입니다.”

부부는 달랐지만 닮았다. 김 회장 역시 “평생 아내에게 지고 살았다. 자식들에게도 이겨본 적 없다. 자식에게 이기면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에게도 져야 한다. 계속 지다보면 언젠가 이긴다”고 덧붙였다. 양보나 관용이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길 필요가 없다. 진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의미”라는 그의 말에 50년 부부생활의 비법이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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