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 인문학협동조합 외, 알마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 인문학협동조합 외, 알마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라는 그 유명한 가사로 2014년 초 가요계를 평정한 정기고와 소유의 ‘썸’은 오늘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썸은 진중한 연애에는 관심이 없고 썸만 타는 혹은 간만 보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장 관리는 선택 아닌 필수라는 말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썸 타는 젊은 세대가 많다지만 한편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를 일러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사포세대(삼포+인간관계)에 이어 오포세대(사포+내집 마련)로 부른다. 요즘 젊은 세대를 이케아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낮은 급여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를 빗댄 용어이자 결혼을 거부하는 세대가 바로 이케아세대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썸 타는 일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각종 미디어 때문이다. 아이돌 천지인 가요판은 이제 현란한 안무와 도발적인 몸짓 혹은 과감한 의상만을 보여주며 ‘썸’이 대세라고 부추긴다.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며 TV 드라마는 얽히고설킨 연인관계와 가족관계를 보여주며,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항변한다. 이래저래 썸은 오늘 우리 사회를 규정짓는 하나의 현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썸 타는 한국 사회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책 한 권이 있다.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가 그 주인공이다. 연애를 인문학의 틀거리에서 생각해 보자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 연애를 강요하는, 이른바 썸 타는 세상을 강요하는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 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연애의 시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쓴 정지민은 2000년대를 ‘연애(지상주의)의 시대’로 규정하면서도 오히려 연애가 어려워진 시대가 바로 이 즈음이라고 말한다. 연애하지 못하면 루저가 되는 세상을 거부하고 당당히 비연애를 주창한 시대가 바로 이때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초식남과 절식남, 건어물녀, 연못남과 연못녀, 삼포세대 등이 탄생했는데, 이들은 연애가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님을 당당히 선포한다.

'변태하는 사랑과 갈라지는 현실'에서 신현아는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남은 사랑은 합리성이라는 틀에 가둬버리는 현실을 고발한다. “연애에 있어서도 언제나 합리성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상황 자체가 주는 피로”가 우리 사회를 배회한다는 것이다. 내남없이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내 안에 타자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여유 자체가 점점 좁아진” 것이 원인이다. 합리성을 따져가며 이어지는 연애는 “정념의 분출이 아닌 일종의 스펙 쌓기”라는 지적은 시의적절하다.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는 연애의 기술이나 아니면 연애에 관한 인문학 지식에 대해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긴 어느 누가 연애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20대와 30대 젊은 필자들이 제시하는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랑과 연애가 톡톡 튀는 글과 함께 재미있게 읽힌다. 썸 타려거든 먼저 이 책부터 읽어보기를 권해드린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